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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영국 삼보불교회와 상가락쉬타 법사①-신종교운동(불교)-4 이치란박사

 














▲ 영국 삼보불교회 교주 상가락쉬타법사     © 매일종교신문

 
상가락쉬타(Sangharakshita 僧護 1925-) 법사는 영국태생으로 인도에서 20여 년 간, 승려로서 재가법사로서 수행한 분이다. 그는 1967년 영국으로 돌아와서 서구불교 승가우의회(西歐佛敎僧伽友誼會)를 창종해서 40여 년 동안 활동하다가 2010년 서구불교 승가우의회를 삼보불교회(Triratna Buddhist Community 三寶佛敎會)로 개칭해서 재 창립한 승가 재가불교일치운동 법사이다. 삼보불교회는 국제 불교 우의단체이다. 불교진리를 현대사회에 적용하여 소통시킨다는 목적으로 창립된 신종교이다. 불교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면서도 특히 서구철학, 심리요법과 예술에서 현대사상을 도입하여 적용시켜 융합한다는 것이 기본철학이다. 불교 플러스 서구사상에 의한 신종교(불교)라고 정의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삼보불교회는 북미, 호주와 유럽을 포함하여 영국 등지에 현재 100여개 지부를 산하에 두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교단체 가운데 하나로서 영국에만 주요 도시에 30여개의 센터와 자체 수련원을 갖고 있다. 삼보불교회는 인도에 삼보불교승가회란 자매단체를 갖고 있으며, 수백 만 명이 이 단체에 소속되어 인도의 신종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단체는 가장 성공적인 불교일치(에큐메니컬)운동 모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교의 모든 종파이념을 포섭하고 있는 단체이다. 단점은 다른 불교단체와는 다르게 확실한 법통(법맥)이 없다는 점이다. 상가락쉬타 법사 스스로 창립자로서 초종파적 단체의 지도자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상가락쉬타 법사(교주 90세)의 개인 이력을 먼저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상가락쉬타 법사는 1925년 런던 태생이다. 그는 어려서 심장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서 요양하면서 많은 책을 접했고, 특히 비기독교 서적과 마담 블라바츠키 여사의 신지학(神智學)을 만나게 되었다. 다음 해에 그의 일생의 진로를 결정할 두 권의 불교서적을 읽었는데,《금강경》과 《법보단경》이었다. 이 두 서적을 읽고 나서 그는 “나는 항상 불교도였다.”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온다. 그가 18세에 런던 불교회에 가입하고 19세인 1944년 인도에서 미얀마 비구(우 띠틸라)에게 삼귀오계(三歸五戒)를 공식적으로 받고 불자가 되었다.
 
1943년 그는 군인으로 영국식민지인 인도와 실론에서 근무했고, 힌두 스승과도 접촉했고 1946년에는 싱가포르로 옮겨서 불교도들과 만나고 명상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는 총을 놓고 벵골의 한 불교사원에서 행자로 입문했다. 그는 몇 년 동안 행자생활을 하면서 불교와 힌두교의 고승과 구루들로부터 다량의 정신적 자양분을 충전시켰다. 1949년에는 버마의 우 찬드라마니 비구의 집전으로 정식으로 사미가 되었고, 상가락쉬타(僧護)란 법명을 받고 나서 일 년 후에는 비구계를 받고, 본격적인 불교학을 수업했는데, 빨리어, 아비담마와 베나레스 힌두대학에서는 논리학을 배웠다.
 
이후 그는 인도 부탄 네팔과 시킴의 국경도시인 칼림퐁으로 옮겼다. 티베트와는 불과 수마일 거리였다. 그는 영국으로 귀환할 때 까지 여기서 무려 14년을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불교청년연합회를 창립하고 불교종파일치(에큐메니컬)운동센터를 설립했다. 영문 저널인 《마하보디(大覺)》편집 일을 했고, 《돌계단》이란 영문 불교잡지를 창간해서 불교교리 에세이 불교관련기사 등을 게재했다. 이 기간 불교 모든 전통에 대한 내공을 연마했다.
  














▲ 인도 공화국 헌법을 기초한 암베드카르 박사가 나그푸르에서 불교에로의 개종선언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1956.10월14일).     © 매일종교신문

 
1951년에는 독일 출신 라마 고빈다를 만나서 정신적인 삶과 예술의 양립성을 알게 되고 이후 그에게 어떤 불교운동 방향과 진로를 암시받았다. 이후 그는 테라바다(상좌부) 비구였지만, 티베트 불교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대승불교와 젠 부디즘(선불교)에 까지 탐험영역을 확대했다. 비록 상좌부 비구로 출발했지만, 상좌부의 도그마티즘(독단주의), 극단적 형식주의와 민족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점점 티베트 불교에 기울게 되었다.
 
상좌부의 많은 비구들을 만났고, 티베트의 린포체(스승)들을 만나고, 티베트 전통에 의한 빅슈계를 받기도 했으며, 선불교에도 매료되었다. 1952년에는 인도초대법무장관을 역임하고 인도헌법을 기초한 B. R. 암베드카르 박사(1891-1956)를 만나서 힌두교도로서의 최하층 지정카스트 계급에서 초 계급주의적인 불교에로의 개종에 영향을 미쳤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법무장관을 역임했지만, 인도 사회의 숙명적인 카스트를 극복할 수가 없었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가히 접촉할 수 없는 천한 인민)으로서 달리츠라는 최하위 지정카스트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1956년 10월 14일 50만 명을 이끌고 불교로 개종하는 선언대회를 갖고 불교도임을 대내외에 선언했고, 인도사회와 전 세계불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상가락쉬타는 암베드카르 박사와는 1950년부터 교우를 하면서, 서로 격려했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상가락쉬타에게 참여불교활동을 통한 불교포교의 확장을 격려했고, 상가락쉬타는 암베드카르 박사에게 카스트란 관념적 굴레에서 탈출할 것을 조언했다. 이런 교감 끝에 개종선언대회가 개최됐고, 두 사람은 뭔가 새로운 깃발을 들려고 하던 차, 암베드카르 박사가 서거하게 되었고, 상가락쉬타는 개종선언 대회의 현장인 나그푸르를 방문해서, 지도자 없는 달리츠 공동체에 용기를 주고 강연 등을 통해서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후 그는 30만 명의 달리츠들이 불교로 개종하는 선언대회에 참가했고, 인도에 삼보 불교 승가회를 창립하게 된다. 이제 인도에서의 활동은 이 정도에서 멈추고, 20년간의 인도에서의 수행생활과 활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삶의 전개를 살펴보자.  

1964년 런던 북부 지역에 있는 함스테드 불교 비하라(상좌부사원)로부터 초청을 받았는데, 다른 종교나 신념들과 논쟁할 토론자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즉각 인기 있는 스승으로 부각되었다. 인기 있는 스승이기는 했으나, 이 비하라가 상좌부를 전통으로 하는 사찰이었기 때문에 그의 불교종파일치운동(초종파)적 접근은 사원평의원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6개월간 머물기로 작정했으나, 사원평의원들은 투표를 통해서 그를 추방하기로 결의해서, 그는 다시 인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쓴 맛을 본 그는 그의 종파일치운동에 대한 신념은 꺾을 수가 없었고, 3년간 인도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기회를 노리다가 다시 영국방문을 하게 되는데, 그때가 1967년 4월경이었다. 일 년 후에 그는 서구불교 승가 우의회를 창립했고, 남녀 각각 12명에게 불교의 초종파 신념에 의한 계(戒)를 주었는데, 일본 출신 선승과 진언종 승려와 상좌부 비구 두 명이 증명법사로 임석하는 특이한 수계 식이었다. 서구불교승가우의회는 재가불교단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승원주의적인 상좌부 전통도 아닌, 그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형태의 불교(新 불교) 단체였다.
  














▲ 영국 삼보불교회의 한 센터에서 열린 수련법회에서 영국과 유럽인들이 불상에 합장한 채 기도하고 있다.     ©매일종교신문












▲ 인도 나그푸르에서 열린 세계여성불자대회.     © 매일종교신문


1960년대 영국은 상좌부와 재가의 젠(선불교) 수행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재가도 승가도 아닌, 대승불교의 전통적인 한 부분으로서 10계를 지키는 법사 신분 정도의 개념이었다. 상가락쉬타는 먼저 불교교리 강좌를 개설하고 수계를 행하면서 멤버 수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강좌는 불교의 모든 전통인 상좌부, 대승, 티베트 밀교와 선불교에 이르기까지를 망라해서 핵심을 강의했다. 매일 수행을 하고 특히 주말에는 새로운 멤버들에게 법회를 열고, 일 년에 두 번 정도 진지한 수련법회를 개최했다. 이렇게 해서 서구불교 승가 우의회는 날로 성장했고, 영국 전역에 지부가 생기고 북미와 호주 유럽 등지로 영역을 확대하게 되었다.
 
필자가 영국 유학시절인 1980년대 중반, 이 단체를 방문했을 때, 많은 수의 영국인과 유럽인들이 수행하고 있었음을 목격하고 감동을 받은 바 있다. 2000년 까지 상가락쉬타는 직접 우의회를 이끌고 사실상의 교주와 같은 위치에서 33년간 회원들의 영적 스승으로 이들을 지도했다. 2000년 이후 남녀 각 8명의 수제자들에게 역할 분담을 시키고 은퇴했지만, 아직도 생존해 있으며 독신으로서 사실상의 교주 역할을 하고 있다.
  














▲ 1960년대 런던불교센터에서 시작한 명상수련회.     © 매일종교신문












▲ 인도 나그푸르 센터에서 인도여성들을 위한 봉재기술 강좌.     © 매일종교신문

영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매우 이른 시기이다. 학술적으로는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원이 세워지고 승려가 활동한 시기는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와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상가락쉬타 법사는 영국불교에서 매우 특이할만한 기여와 유산을 남겼다고 하겠다. 특히 그는 영국인들이 종신형의 수행자로서 불교를 전파하는 성직자(법사)로서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여신 분이다. 상가락쉬타 법사의 기여는 불교의 초종파적인 일치운동에 입각해서 상좌부 대승 밀교 선불교를 통불교적 이념으로 회통시킨 분이다. 그는 불교경전번역 저자로서의 역경과 수행을 동시에 해 낸 인물이며, 사원 대신 센터를 설립해서 불교의 생활화에 성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기존의 불교전통인 승원불교(僧院佛敎)와 재가불교의 기복주의를 극복하고, 양자를 통합 조화한 이른바 10계 정도를 지키면서 수행과 포교를 함께 하는 성직자 신분을 갖는 불교의 프로테스탄트적인 불교공동체를 설립해서, 서구사회에 정착시켰다.
 
차회에서 삼보불교회의 이념과 조직 활동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지만, 영국에서 이런 신종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신념과 노력과 역량은 본 받을만한 모델이라고 하겠다. 재가불교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불교이상을 꿈꾸는 한국불교의 재가지도자들에게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짧은 기간에 금방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고 하는 한국의 재가불교지도자들에게는 하나의 불교 공동체 그리고 중생들에게 기여하는 이상적인불교모임의 탄생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해주는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계속).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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