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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삼보 불교종 교주 상가락쉬타 법사와 인도학(Indology)⑤-신종교운동(불교)⑧/ Dr. Lee Chi-Ran

 














▲ 윌리엄 존스 경(1746–1794), 대영제국 대법원 인도 벵갈(콜카타) 지역 하위 판사, 문헌학자이 기도 했던 그는 인도-유럽어족의 관계성을 제기하고, 1784년 ‘벵갈 아시아틱 소사이어티’를 창 립했다.     © 매일종교신문












▲ 인도 콜카타 소재, 아시아틱 소사이어티 본부 건물.     © 매일종교신문

영국 삼보 불교종을 창종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교주 상가락쉬타 법사는 현재 90세의 물리적 연령을 아랑곳하지 않고 왕성한 저술 작업을 하고 있어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신념은 인간에게 초능력의 힘을 불어 넣어준다. 대개 종교가들의 삶을 관찰해보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는데, 원동력은 바로 이런 종교적 신념이라고 필자는 보고 싶다. 정치인이 정치적 권력을 잃고 사업가가 경제적 기반을 잃으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쉽게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것은 세속적 욕망의 무상함을 모르고 권력과 부에 너무 집착한 결과로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탓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정신생활을 하는 종교가의 경우, 부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신념에 죽고 살기 때문에 이런 세속적 부와 권력의 부침에는 초연하다. 그렇지만 종교가 중에는 권력과 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세속인보다 더 열등한 허울만 종교가인 사람들이 꽤나 되는데, 이런 부류들은 권력이나 부를 잃으면 세속인보다 더 추하게 몰락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와 현실에서 가끔 보게 된다. 종교적 신념은 이 세상을 정의와 윤리적인 사회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의와 윤리에 충실한 종교가들을 존경하고 추종하는 것이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영국 출신이다. 젊은 시절 제도권 내에서의 정규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많은 서적을 탐독하는 독서광이었다. 세계적인 저술가들 가운데는 제도권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마스터피스(명작)를 만들어 내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문재(文才)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지만, 무엇보다 후천적 노력이라고 본다. 많이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쏟아내게 되어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갖고 한 분야에 매진하노라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 일가(一家)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객관적인 여건과 개인의 삶의 조건이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데, 상가락쉬타 법사는 영국이라는 객관적 여건의 혜택을 많이 본 분이라고 간주하고 싶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1925년 런던 태생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게 된 시기는 1940년대이다. 이 무렵 영국은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진열강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앞서가는 선진강국이었다. 학문과 종교 분야에 국한해 보면, 이 시기 영국은 세계에서 탑을 달리는 학문 선진국이기도 했다. 학문과 종교 분야에 있어서도 불교학으로 카테고리를 더 좁혀보면, 영국은 근대불교학의 메카였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해서 인도북부를 경유하여 중앙아시아와 서역(중국 신강성자치구)을 통과해서 중국에 전해져 동아시아 불교의 전통을 확립했고, 남쪽으로는 남인도와 실론(스리랑카)으로 전해져서 동남아시아에 확장되었다. 또 하나의 인도 후기 대승불교는 8세기경 티베트로 전해졌다. 이렇게 보면, 중국에 전해진 역경(譯經)에 의한 한전(漢傳)불교와 실론과 동남아에 전해진 빨리어(상좌부 삼장)불교, 그리고 티베트에 전해진 산스크리트어의 티베트역에 의한 대승불교이다. 각 불교전통은 독자적인 역사와 맥을 이어서 보존. 발전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적인 의미의 과학적인 학문 방법에 의한 불교학연구는 19세기 유럽에서 부터이다.
 
유럽의 열강들은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식민지화 하면서, 이들 나라의 역사와 언어와 종교를 만나게 된다. 열강의 관료나 군인가운데서 학자적 소양이 있었던 사람들은 동양의 언어와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른바 동양학의 연구와 체계가 필요함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학문적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식민지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역사 언어 종교 등 모든 인문학적 분야를 알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통치에 보탬이 되는 자료제공 성격으로 출발했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학문 그 자체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서양의 인문학과 등치(等値)되는 영역임을 이내 알아차리게 되었다. 더욱이 관료나 동양학자들을 흥분시키게 된 결정타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가 유럽의 제 언어와 뿌리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종 또한 멀리 올라가면 한 조상이라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인식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이런 뉴스가 유럽의 지성계에 알려지면서 이른바 동양학 열풍이 불게 된다. 이런 기미는 이미 17세기부터 조짐이 보였고, 18세기에 이르러서도 소수의 학자들에게 가설로 수용되었지만, 결정적인 적인 것은 18세기 말경, 윌리엄 존스 경(Sir William Jones 1746–1794)이었다. 그는 영국의 문헌학자이면서 영국 대법원 인도 벵골 지역의 하위 판사였다. 학문적 호기심이 발동, 인도 언어에 관심을 갖다가 우연히 인도의 언어들이 유럽어의 제어와의 연관성의 존재를 확인하고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기 시작, 인도-유럽어족의 관계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윌리엄 존스 경의 아버지는 웨일스 출신 수학자였다. 윌리엄 존스 경은 런던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언어에 뛰어났다. 그는 영어, 웨일스어 외에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아랍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중국어의 한자를 쓸 정도로 언어천재였다. 그는 그의 생애 말년에는 1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28개 언어가 더 가능했던 다국어 천재였다. 아버지를 세 살 때 잃고, 어머니의 손에서 양육된 그는 옥스퍼드를 가정교사를 하면서 졸업했다. 24세 무렵에는 이미 번역으로 명성을 얻었고, 1770년부터 3년간 미들템플 법학원에서 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26세인 1772년에 왕립학회의 회원이 될 정도로 명성을 얻었고, 웨일스에서 순회판사를 했고, 1783년에는 대영제국대법원 인도 벵갈 지역 하위 판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급진파이기도 해서, 친 미국 독립을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인도로 부임했을 때는 인도는 유럽의 학자들에게 아직은 미개척지였다. 그는 베다를 공부하고 산스크리트어를 본격적으로 학습했다. 근 10년간 인도학에 몰두한 나머지 인도 아 대륙의 모든 사회과학 인문 분야의 근대학문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현지 법률, 음악, 문학, 식물학과 지리학 관련 책을 쓸 정도로 인도학 전반에 박학했고, 인도문학의 중요한 작품을 최초로 영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47세란 나이로 1794년 요절했고, 그는 콜카타의 공원묘지에 묻혔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786년에 개최된 아시아틱 소사이어티 발표회에서 제안한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 라틴어가 공통 뿌리라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 다른 유럽어의 제어와도 관련성을 제기했다. 그가 인도-유럽어의 관련성을 치밀하게 연구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 같은 관찰은 유럽의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물론 윌리엄 존스 경의 관찰보다 앞서서 16세기에 인도를 방문한 유럽인들은 인도어와 유럽어의 사이에 유사성을 알게 되었고, 1653년 유럽의 한 학자가 인도(이란)-유럽어의 원시언어에 대한 책을 썼고, 1787년 프랑스 아카데미의 한 회원이 산스크리트어와 유럽제어의 유사성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윌리엄 존스 경은 산스크리트어 이란어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와 켈트어를 결합하는 ‘원시언어’를 가정했다. 그의 가설이 선행학자들 보다는 정확도 면에서 떨어지고 인도-유럽어족에 이집트어 일본어와 중국어를 포함하고 힌디어를 생략한 것은 그의 실책이기는 했지만, 문헌학자로서 비교언어학과 인도-유럽어 연구의 통로란 명성을 얻었다.
 
이로써 유럽에 인도학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인도학(Indology) 연구가 성립하게 된다. 인도학이란 아시아 연구의 한 부분으로서, 인도 亞 대륙의 역사 문화, 언어와 문학의 학문적 연구를 말한다. 여기서 인도 아 대륙이란 현대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몰디브, 네팔과 동부 아프가니스탄을 일컫는다. 인도학은 인도의 종교인 자이나교 불교와 빨리문헌과 시크교와 함께 산스크리트문학과 힌두교의 연구를 포함한다. 남인도의 드라비디언 연구는 별개의 가지로 분리시킨다. 일부학자들은 현대 인도학과 고전 인도학을 구별하고, 고전 인도학은 산스크리트어와 다른 인도 고전어 출처에 더 집중하고, 현대인도학은 정치와 사회학을 위주로 한 현대의 인도가 되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갖는 것은 고전 인도학 연구이다.
 
사실 인도연구는 기원전 4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그리스 대사인 메가스테네스(350–290 BC)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찬드라굽타(재위 322-298 BC)의 궁정에 파견되어 인도에 대한 4권의《인도》란 소개 책을 저술한 바 있다. 지금도 파편으로 존재한 이 책은 지리학자들인 스트라본(기원전63-기원후24년경)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부 라이한 알-비루니(973–1048 AD)는 페르시아 학자로서 인도의 정치 군사에 대한 역사와, 인도의 문화, 과학, 사회 종교사를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그는 또 인도의 인류학을 비롯하여 인도어를 구사할 정도로 인도에 대한 박식한 지식인이었다.
 
근대기인 18세기 말경에 윌리엄 존스 경을 비롯한 헨리 토마스 콜부룩, 오거스트 윌헬름 슐레겔 등이 인도학 연구의 개척자들이다. 19세기에 이르면 인도학은 보다 학문적 주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브리티시 인디아(영국인도)라는 문맥에서, 낭만적 동양학에 대한 연구로서 아시아학과 함께 인도학 연구가 나타나게 되었다. 1784년에는 윌리엄 존스 경에 의해서 아시아틱 소사이티가 캘커타(콜카타))에서, 1822년에는 소시에테 아시아티크(프랑스)가, 1824년에는 로열 아시아틱 소사이어티(영국)가, 1842년에는 아메리칸 오리엔탈 소사이어티(미국)가, 1845년에는 저먼 오리엔탈 소사이어티(독일) 등의 일종의 아시아(동양학) 학회가 창립되었다. 일본은 1949년 인도학 불교학 일본협회를 발족했다.
 
1850년대에서 1870년대 사이에 성 피터즈버그(러시아)에서 산스크리트 문학 연구가 체계적으로 연구되었고, 1879년 영국에서 힌두 텍스트 위주의《동방성서》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되고, 1887년에는 인도 고전 문법학자인 파니니의 문법서가 독일에서 발간되고, 막스 뮬러에 의해서《리그베다》가 1849-1875년 사이에 출현하고, 1897년에는 세르게이 올덴부르크가 산스크리트 텍스트인 불교문고를 편집.발간했다.
 
이처럼 유럽(러시아 포함)에서는 아시아(동양학)연구의 한 부분으로서 인도학 연구가 붐을 이루게 된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신종교인 삼보 불교종과 상가락쉬타 법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통과해야할 통로로서 유럽의 동양학 연구 배경사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욕심에서 장황한 설명을 하고 말았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인도에서 20년을 보내면서 그의 지식은 바로 유럽 학자들에 의한 인도학(Indology)과 불교학(Buddhology)이 원천이 된다고 했다. 상가락쉬타 법사가 인도에서 활동할 시기의 인도학과 불교학은 절정을 이루었고 아카이브(Archive)가 상당히 갖춰져 있을 시기이다. 이것은 그의 인도학 불교학의 원천이 된다고 그는 그의 회고록에서 고백하고 있다.  














▲ 상가락쉬타 법사의 인도 시절 회고록 표지.     © 매일종교신문

 
우리는 여기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라는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의 영문학자·비교문학가·문학평론가·문명비판론자의 저서인《오리엔탈리즘》을 비켜갈 수 없다. 그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에 근거한 서양 위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동양학자들이 다 제국주의를 위해서 동양학을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제국주의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해줬고, 식민지 통치를 위한 연구 측면에서 재정적 후원 또한 있었음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가락쉬타 법사는 이런 식민지국에서의 정치적 이유에서 불교에 접근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차회에서 더 소개하기로 하겠다. 대표적인 인도학 관련 학술지들은 인도-이란저널(Indo-Iranian Journal),로열 아시아틱 소사이어티 저널(Journal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아메리칸 오리엔탈 소사이어티 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저널 아시아티크(Journal asiatique), 저먼 오리엔탈 소사이어티 저널(Journal of the German Oriental Society), 인도철학 저널(Journal of Indian Philosophy), 인도학 불교학 저널(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등이 있다. (해동불교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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