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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힌두에서 불교로 개종선언② 신종교운동(불교)⑫ 이치란 박사(매일종교신문)

 








암베드까르 박사는 처음에는 시크교로 개종할까하고 생각도 해봤다. 시크교에서는 지정카스트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만일 그가 시크교도가 되면 그는 제2 카스트로 편입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평등을 말씀하신 사캬무니 붓다에 마음이 쏠렸고, 어딘지 모르게 관심이 갔다. 그는 붓다와 불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실론에 가서 처음 개최되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 1950년 5월 25일) 창립총회에 참석하였고, 실론과 세계불교지도자들을 만나고 실론 불교성지를 순례하고 불교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게 된다.
 













▲ 암베드까르 박사가 60만 명과 함께 불교로 개종선언대회를 연 장소에 세운 딕샤부미 스투파(탑), 마하라슈트라 주, 나그푸르, 인도.     © 매일종교신문












▲ 암베드까르 박사가 1956년10월14일 개종선언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나그푸르, 인도.     © 매일종교신문

 
그는 여성인권신장을 위한 힌두법전 개정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려고 했으나, 네루 수상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내각에서 스스로 사퇴하고 야당 지도자로 변신했고, 1954년에는 제3차 세계불교도우의회가 개최되고 제6차 경전결집대회(經典結集大會)가 열리는 버마의 랭군(양곤)을 두 번이나 갔다 오는 등, 그는 불교에 심취했고, 1956년에는《부처님과 그의 가르침 The Buddha and His Dhamma》을 탈고 했고, 사후(死後)에 출간됐다. 그는 실론으로 가서 함말라와 삿다티싸(Ven. Prof. Hammalawa Saddhatissa Maha Thera 1914–1990) 스님을 만나서 자문을 받았다. 삿다띠싸 큰 스님은 인도 힌두대학, 런던대학과 에딘버러대학에서 공부한 분으로 나중에는 런던에서 오랫동안 포교활동을 한 엘리트 학승이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삿다띠싸 스님을 만나고 와서 공식적인 개종선언(改宗宣言) 대회를 구상하게 된다. 인도사회에서의 공개적인 개종선언을 한다는 것은 인도 사회구조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암베드까르 박사에게 개종에 대한 자문을 해준 함말라와 삿다티싸(1914–1990) 큰스님.     © 매일종교신문


암베드까르 박사가 힌두교의 최하위 지정카스트에서 불교로의 개종을 하게 된 사상적 배경은 부처님께서 바라문의 종성관(種姓觀 카스트)을 깨트리고 4성(姓) 가운데 선행을 닦으면 청백의 보(報)를 받고 빈ㆍ부ㆍ귀ㆍ천의 차별 없이 도증(道證)을 성취한다고 말씀하신 데에 있으며, 3보(三寶)를 독실이 믿는 사람은 세간의 복전(福田)이 되어 사람의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 가르치신 경전적 법문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달리트 불교운동을 하면서, 지정카스트의 탈출구를 불교에서 찾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확신이 서자, 개종선언대회란 거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디데이는 1956년 10월 14일로 정하고 장소는 서남부 마하라슈트 주 나그푸르 딕샤부미란 곳에서다. 현재는 그 장소에 딕샤부미 스투파(탑)가 세워져 있으며, 인도불교도들의 성지가 되었고, 연간 수백만 명이 이곳을 순례하고 매년 기념법회를 갖는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60만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힌두의 수드라 계급을 버리고 무계급(無階級)의 불교도로 개종선언을 단행했다. 60만 명은 부처님을 대신한 고승으로부터 3귀의 5계(三歸依 五戒)를 받는 절차를 밟는다. 삼귀의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하고 불자로서 불교의 기본 5계를 지킨다는 불자로서의 수계를 받았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힌두의 최하층인 수드라 계급을 버리고 불교도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불교도로 개종하면서 22개의 서원을 발표한다. 22개의 서원은 “1. 나는 브라흐마(梵天=힌두교의 창조신), 비슈누(평화의 신)와 마헤샤와라(시바신의 불교화로 大自在天=지배신)를 믿지 않으며 숭배하지 않는다. 2. 나는 신의 화신이라고 하는 라마와 크리슈나를 믿지 않으며 숭배하지 않는다. 3. 나는 가나파티야(지혜의 신)와 힌두의 다른 남신들과 여신들을 믿지 않고 숭배하지 않는다. 4. 나는 신의 화신(化神)을 믿지 않는다. 5.나는 부처님이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며, 이것은 완전한 광기이며 거짓 선전이라고 믿는다. 6. 나는 샤라다(힌두의례)를 행하지 않는다. 7.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위반하지 않는다. 8. 나는 브라만(바라문)들의 어떠한 의식의 집전도 허용하지 않는다. 9.나는 인간의 평등을 믿는다. 10. 나는 평등의 확립을 위해서 노력한다. 11. 부처님의 팔정도를 따른다. 12.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10바라밀을 따른다. 13.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위하여 동정심과 자비심을 갖고, 그들을 보호한다. 14. 나는 훔치지 않는다. 15. 나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16. 나는 성적 죄를 짓지 않는다. 17. 도수 높은 술이나 마약을 취하지 않는다. 18. 나는 일상생활에서 팔정도를 실천하며 자비심을 실천한다. 19. 나는 인간성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진보와 발전을 저해하는 힌두교를 포기한다. 왜냐하면 불평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를 나의 종교로 수용한다. 20. 부처님의 진리(법)만이 오직 진리의 종교라고 믿는다. 21. 나는 새로운 탄생을 믿는다. 22. 나는 이제부터 나의 삶을 붓다의 가르침인 진리에 따라서 할 것을 엄숙하게 선언하고 확신한다.”
 













▲ 힌두교의 창조신 브라흐마.     ©매일종교신문












▲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비슈누 신.     ©매일종교신문












▲ 비슈누의 10 화신들로서, 고타마 붓다를 비슈누의 한 화신으로 묘사.     © 매일종교신문












▲ 시바신의 불교화한 大自在天으로 화신한 지배신인 마헤샤와라.     © 매일종교신문

암베드까르 박사는 22개 항의 서원을 발표하고 힌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 이것은 인도 사회에서 엄청난 사건이다. 수천 년 내려온 인도의 정신적 혼(魂)이라고 할 수 있는 힌두교에의 도전이면서 사회 밑바닥 구조를 흔드는 지진과도 같은 일이었다. 22개항을 요약하면, 힌두의 신들을 부정하고 숭배하지 않겠으며, 힌두교의 지배신인 시바신의 한 화신이 고타마 붓다란 것은 광기이며 거짓선전이라고 노골적으로 부정해 버린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법이나 가르침이 아니면 그 어느 대상도 따를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불교적 윤리인 오계에 입각해서 살아갈 것이며, 전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항목은 인도 사회의 상층인 브라만(바라문)이 집전하는 그 어떤 힌두의례(儀禮)의 거행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도에 가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해가 되겠지만, 인도는 매일 이런 힌두 의식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또한 사회구조의 상층을 이루고 있는 브라만의 전업(專業)을 부정하고 따르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험한 난관을 선택한 것이다. 인도역사상 기원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의 종교간 평화선언보다도 더 획기적인 신교(信敎)의 자유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인도사회에서 지정카스트인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는 소수이긴 했지만,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의해서 사회진출을 해서 상당한 위치에 이른 사람들도 제법 됐지만, 다수는 밑바닥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그푸르의 한 지역에서만 60만 명이 호응했고, 10월 16일은 마하라슈트라 주의 찬드라푸르 에서는 백만 명 이상이 참가했고, 여기서도 똑 같은 취지의 개종선언대회를 주도했다. 이로써 달리트 개종선언대회는 인도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딜리트 불교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 암베드까르 박사가 선언한 22개의 서원을 새긴 기념물. 나그푸르 딕샤부미, 마하라슈트라 주 인도.     © 매일종교신문


나그푸르와 찬드라푸르에서 개종선언대회를 주도한 암베드까르 박사는 네팔 카트만두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제4차 세계불교도우의회 대회가 열렸고, 그는 여기서 인도에서의 개종선언 대회에 대하여 특별히 연설했으며, 세계불교지도자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이런 거사를 치루고 델리의 집으로 와서 조금 있다가 1956년 12월 6일 영면하게 되는데, 1948년부터 그를 괴롭혔던 당뇨가 원인이었다. 1954년에도 몇 달간 병원에 있었지만, 완치되지 않아서 결국 당뇨의 벽을 넘지 못하고 65년의 생을 마감했다.
 
암베드까르 박사는 비록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지만, 영국(런던대학)과 미국(컬럼비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서는 인도 공화국 헌법을 기초하고 네루 정부에서 초대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지정카스트 달리트를 대변하는 정당(공화당)을 창당해서 당수를 역임하는 등 정치활동을 했고, 명성을 얻었지만, 최하위 카스트란 차별의 벽을 넘지 못하자, 불교로의 개종을 통해서 자신뿐 아니라 수천만 명의 불가촉천민들로 하여금 카스트의 수렁에 탈출하도록 실천에 옮긴 분이다. 암베드까르 박사가 달리트를 위해서 남긴 유산은 너무나 막대하다고 하겠다. 암베드까르 박사의 주도로 두 번에 걸쳐서 대규모 개종선언대회를 한 이후에 이 개종선언대회는 계속해서 인도 전역에서 개최됐다.
 













▲ 암베드까르 박사 시신을 화장(火葬)한 다다르에 세워진 짜띠야 부미(일종의 사당), 인도 서남부 대도시 뭄바이 근처. 산치대탑의 모형을 본떠서 만든 일주문.     © 매일종교신문


개종선언대회는 인도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힌두교도나 非 힌두교도들에게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물론 카스트 제도가 인도사회에서 존재한다고 했지만, 브리티시 인디아 통치기간을 통해서 인도인들에게는 신분과 직업은 별개의 사회적 위상으로 변화해 갔지만, 관념상으로는 그대로 인도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브라만 출신이 힌두의 사제역할만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크샤트리아 계급이 비즈니스를 하는 등, 전통적 의미의 카스트에 의한 직업은 다양하게 경계를 넘어서 분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수천 년 내려온 관습은 인도인들을 구속하고 있었다. 특히 지정카스트나 부족들에게는 카스트는 하나의 망령(妄靈) 그 자체로서 그들에게는 악습이었다. 암베드까르 박사가 죽고 나서 여기저기서 개종선언이 잇따르고 조직화된 다수의 개종선언대회가 계속 개최되고 있다.
 
불교성지인 사위성 기원정사가 있는 우타라프라데시 주에서 달리트 출신의 유명인사가 개종을 선언하였고,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개종선언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하나의 개종운동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달리트 불교운동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마하라슈트라 주에서도 여기저기서 개종선언이 잇따르고 달리트 불교운동을 위한 단체가 설립되는 등 보다 조직적인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또한 보다 조직적인 다수 개종선언대회가 1957년 럭나우에서 개최됐고, 2001년에는 경찰과 충돌을 일으켰고, 2006년에는 인도 중남부 하이데라바드, 카르나타카 주의 굴바르가에서, 암베드까르 박사 서거 50주년을 맞아서 선언이 이루어지고, 2007년에는 뭄바이에서 인도 공화당이 창당되어 1952년 암베드까르 박사가 창당한 인도 공화당에서 분리하여 창당하는 등, 정치적 분열이 생기고 힌두지도자들로부터 달리트 불교운동이 사회구조 개혁보다는 정치적 곡예를 일삼아 일부 소수 지도자들의 이익을 노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등, 달리트 불교운동이 고비를 맞게 되는 등, 달리트 불교운동노선에 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해동불교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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