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불교 아카데미
 
 
HOME| 공지사항| 사이트맵
해동연한 아카데미 해동연한 아카데미 해동경전 해동불교대학 선불교 부설기관/웅변
1 2 3

 Total 93articles,
 Now page is 3 / 5pages
View Article     
Name   관리자
File #1    2015111321404213.png (211.3 KB)   Download : 471
Subject   인도 카스트와 불교의 숙명④-신종교운동(불교)-14 매일종교신문(Dr Lee Chi-Ran)





















▲ 힌두교도에서 불교로 개종하기 위한 최근에 개최된 수계법회에 참가한 지정카스트들이 개종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식이 요구된다. 인도이해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카스트와 종교이다. 카스트와 종교는 인도인의 신분과 사회적 계층을 의미한다. 중국과 함께 엄청난 인구를 갖고 있는 인도사회는 중국사회와도 근본적으로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신과 시장경제 체제(독립 후 사회주의적)를 국가경영의 기조로 삼는다고 할지라도 종교와 카스트 문제만은 아직도 인도사회 저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인도인의 의식을 규정하고 있다. 인도헌법은 아시아에서는 가장 민주주의적인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많은 인구를 감안하면 인도의 각종 선거제도나 자치정부나 중앙정부의 장과 상하양원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절차는 매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밑바닥에 흐르는 카스트나 종교를 보면 인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중국이나 중앙아시아를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사회구조가 종교의 영향은 다소 있으나 카스트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을 위시한 동시아문화권에서의 카스트라고 할 수 있는 사농공상(士農工商)도 인도처럼 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도는 다르다. 카스트와 종교를 먼저 이해해야 인도사회를 이해하고 인도를 조금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도사회는 크게 아리안과 드라비다인의 두 인종과 기타 소수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리안 인들은 수천 년 전에 중앙아시아에서 힌두쿠시 산맥을 넘고 이란 고원을 통과하여 주로 갠지스 평원을 점령하여 정착했다. 선주민들은 밀리고 밀려서 데칸 고원 남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들이 드라비다인들이다. 아리안 인들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며, 드라비다인들의 언어는 인도-유럽어와는 전혀 다른 음운체계를 갖고 있다. 카스트나 종교와 또 다른 인도인들을 의식적으로 갈라놓는 것이 있다면, 인도-유럽어족과 非인도-유럽어족인 드라비다인들과의 사이에 놓인 언어문제일 것이다. 인도의 내적 갈등은 카스트 종교 언어가 아닌가 한다. 이런 맥락에서 신종교(불교)운동을 펼치고 있는 달리트 불교운동을 조망하면서, 카스트와 종교의 숙명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른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서 최하층의 지정카스트인 달리트는 언어적으로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종교는 힌두교에 속하지만 카스트의 신분이 낮기 때문에 이름난 힌두사원에 들어갈 수 없으며 참배할 수도 없다. 인도 땅에서 살아가는데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카스트의 망령은 존재하며, 이것은 인도인들의 의식을 은근히 구속하고 있는 암적 요소이다. 헌법상 법 앞에 만민은 평등하지만, 카스트라는 망령은 아직도 하층의 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아래 그림은 1837년경 한 기독교 선교사가 수집한 72가지의 카스트 표본 가운데 일부이다. 힌두 무슬림 시크와 아랍의 카스트 실례이다. 이 무렵 불교도는 아예 없다.
 













▲ 힌두 음악가 카스트     © 매일종교신문












▲ 무슬림 상인 카스트     © 매일종교신문












▲ 시크 족장 카스트     © 매일종교신문












▲ 아랍 군인 카스트     © 매일종교신문

인도의 고대사회와 중세시대에 카스트의 출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해 오고 있다. 그 첫째는 와르나(varnas色)에 기반을 둔 이데올로기로서의 사성계급(四姓階級)을 말한다.
 
브라민(Brahmins바라문):승려(힌두) 교사와 설교자 등 지식계급으로 정신활동에 종사하는 계급.
크샤트리아(Kshatriyas):왕, 주지사(정치가), 행정가, 전사(戰士)와 군인 등 주로 정치 행정 등 관료 계급.
바이샤(Vaishyas): 목동 농부 장인(匠人)과 상인 예술가 계급.
슈드라(Shudras): 노동과 봉사근무자(노예) 등의 계급.

슈드라를 제외한 3계급은 침입자들로 구성되고, 침입자의 내부 힘의 균형에 의해서 계급이분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색깔을 뜻하는 이 와르나는 출생에 의하여 카스트가 규정되는 자티(jati)와는 다르다. 이 와르나 즉 카스트 제도는 마누스므르티(Manusmṛti मनुस्मृति))란《마누법전》에 근거한다. 마누 법전은 산스크리트어의 운문(韻文)으로 쓰인 12장 2,684조(條)로 이루어져 있는 고대 인도의 법전이다. 인류의 시조 마누(Manu)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현존하는 법전은 기원전 200년-기원후 200년에 완성된 것으로 국왕이나 종성(種姓)의 의무, 민법이나 형법, 의례나 제사, 일상 행사 등 인도인의 생활 전체를 규정한 법전이다. 종성 제도에 입각한 사회를 유지하고 브라만의 특권을 지키려고 하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보며, 이 법전은 가장 권위 있는 힌두 법전으로 과거 2천 년 간 존중되어왔고 동남아시아 각국에 이 법전이 준 영향은 크다고 하겠다. 달리트 불교운동을 주도한 암베드까르 박사가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힌두사원 앞에서 수 천 권의 마누법전을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이 마누법전이 종성의 의무를 규정하고 카스트의 이데올로기의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카스트 출현의 두 번째 설은 사회-경제적 요소에 의해서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12-18세기 무슬림 통치 시대와 18-20세기 브리티시 식민지 인도시대를 두고 이 같은 설을 제기 하는데, 인도의 중세와 근세 시대에 다소 경제적 요소에 의해서 카스트 사회의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하지만, 카스트 출현은 고대시대 와르나(색)에 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사성계급은 고대시대부터 인도사회를 구성하는 주요소이지만, 다섯 번째 구성원인 소수부족이나 불가촉천민은 무조건적으로 외면해 버렸다. 인도사회에서의 종성제도는 고대시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이 제도가 무슬림통치와 영국식민지 시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고는 하지만, 무슬림과 브리티시는 이 제도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더 심화시켰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인도의 주류 종교는 힌두교이다. 힌두교는 인도와 네팔의 주류 종교로서 인도인(네팔)의 일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힌두교는 결코 단순한 종교가 아니며, 힌두교도는 주로 인도 亞 대륙에 분포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기독교 이슬람에 이어서 세 번째로 큰 종교 인구를 갖고 있다. 힌두교의 발생은 고대 인도의 종교 사상인 베다에서 비롯되며, 베다의 사상은 기원전 15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다는 종교로서 그리고 글로서 오늘날 남겨진 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힌두교는 여러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다신교적 일신교로서, 교주(敎主) 즉 특정한 종교적 창시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힌두교를 소개하려면 그 범위가 너무 방대하고 깊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큰 종교이다. 다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범위는 불가촉천민들이 힌두교를 떠나서 불교로 개종하는 달리트 불교운동의 관점이다.
 
전회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힌두교의 교의는 최하층 지정 카스트인 달리트들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 제1차적인 이유이다.《마누법전》에서 규정한 이른바 종성(種姓)의 의무에서 보듯이, 불가촉천민은 이 종성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서의 굴레이다. 마지못해서 힌두교에 속하지만, 실생활에서는 힌두사원에 가서 참배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힌두교에서 이들을 포용했다면 달리트 불교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2005년 11월 문을 연 델리 소재 힌두교 최대사원 악사르담.     © 매일종교신문

 
암베드까르 박사라는 지성인의 눈에 비친 힌두교는 자신들을 포용해주는 종교가 될 수 없었고, 힌두의 신들은 이들의 편이 아니었음을 통감한 그는 깃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을 우리는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결국 그는 불교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인도에서는 불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실론(스리랑카)에서 불교를 봤고, 자신들의 탈출구는 불교라고 믿게 되었고 그는 불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인도의 힌두나 자이나교 같은 종교나 철학 어디에도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근거가 없었지만, 불교에는 있었다.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기원전563-기원전483)는 크샤트리아 출신임에도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이나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하며, 특히 인간에게 있어서 불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고타마 붓다는 이 인간세계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5백번이나 생을 바꿔서 태어난 본생(本生)을 갖고 있으며, 온갖 부류의 생명체로 수없는 생(生)을 반복했음을《자타카(Jataka)》에서 말해주고 있다.《자타카》는《본생담(本生譚)》이라고도 하는데 빨리어로 씌어진 고대 인도의 불교 설화집이다.
 













▲ 부탄 팀부의 한 사원에 소장된 당카(탱화)에 표현된 자타카이야기.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가 석가족(釋迦族)의 왕자로 태어나기 이전, 보살로서 생을 거듭하는 사이에 천인(天人)·국왕·대신·장자(長子)·서민·도둑 또는 코끼리·원숭이·공작·물고기 등의 동물로서 허다한 생을 누리며 갖가지 선행 공덕(善行功德)을 행한 이야기 547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시인이었던 아슈바고사(Aśvaghoṣa 馬鳴 기원후 80–기원후150)는 붓다의 전기인《붓다차리타(Buddhacarita、बुद्धचरित、仏所行讃)》를 산스크리트어 서사시로 저작했다. 대승 경
 













▲ 종려나무 잎에 그려진 싯다르타 탄생도, 팔라왕조시대(8-12세기) 날란다사원대학.     © 매일종교신문


전인《불설보요경(佛說普曜經)》이 있는데,《방등본기경(方等本起經)》이라고도 하는데, 산
스크리트어 본은《랄리타위스트라(Lalitavistara)》라고 한다. 기원후 308년 중국 서진(西晉)때 축법호(竺法護)가 역출(譯出)했다. 부파불교의 설출세부(로코타라와다Lokottaravāda 說出世部)의 율장(律藏)인《마하와수투Mahāvastu 大事》에서 붓다의 초기 삶을 묘사하고 있는데,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사이에 성립된 저작으로 산스크리트어 빨리어와 프라크리트어(인도유럽어로서 인도중부지방언어)로 산문과 운문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밖에도 몇 개의 경에서 붓다의 자서전적 내용을 찾아볼 수 있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남방 상좌부 전통에 따라서 실론에서 비구가 된 비구 나나몰리(Nanamoli 1905-1960)가 빨리어 경전을 근거로 저술한 베스트셀러 이면서 가장 정평 있는 명작《The Life of the Buddha 붓다의 일생》     © 매일종교신문


암베드까르 박사는 붓다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 까지 붓다의 전기를 비롯해서 붓다의 교설을 전부 통독하고 나서, “본래 불가촉천민이란 없다. 인도 고대시대에는 브라만(바라문)과 지배자들이 만든 것이다. 중세에는 이슬람 통치자들이 더욱 발전 시켰고, 브리티시 인디아 시대에는 카스트를 통치를 위하여 그대로 이용했을 뿐이다. 우리를 불가촉천민 계급에서 탈출시켜줄 분은 붓다 샤카무니 뿐이다.” 라고 확신을 갖고 달리트 불교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해동불교아카데미원장)


 





No
Subject
Name
Date
Hit
53    실크로드기행⑲몽골시대의 실크로드-원나라에 이르러 실크로드 선상을 완전히 장악한 몽골제국 관리자 2016/07/19  2040
52    실크로드기행⑱실크로드의 여행가들 - 무역, 군사적 목적, 종교·문화적 교섭 위해 생명 담보하며 다닌 먼길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7/01  2290
51    실크로드기행⑰실크로드의 사막과 낙타 - 사막서 말보다 진가를 발휘한 낙타/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6/24  2114
50    실크로드기행⑯실크로드와 말(馬) - 실크로드 선상에서 화물운반수단으로 사용된 말은 조랑말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6/13  2203
49    실크로드기행⑮실크로드의 영웅과 종교 - 한 무제, 장건, 알렉산더대왕, 카니슈카대왕. 칭기즈칸 등의 종교관/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6/07  2263
48    실크로드기행⑭실크로드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 주류종교·국교 위상에서 박해·쇠퇴로 인한 소수종교·소멸에 이르기까지/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5/30  2223
47    실크로드기행⑬차마고도를 가다 - 중국 사천성에서 미얀마, 티베트, 인도의 벵골만에 이르는 茶馬古道/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5/16  2415
46    실크로드기행⑫비단길의 역사와 주요 루트 - 그리스 철학 사상과 인도불교, 중국과 페르시아 사상 등 혼합문명이 형성되기까지 관리자 2016/05/09  2383
45    실크로드기행⑪신 실크로드의 탐험가들, 그들은 누구인가 -인문학적 지평 넓히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목적의 여행가들 관리자 2016/04/27  2313
44    실크로드기행⑩사마르칸드와 부하라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4/04  2502
43    실크로드기행⑨인도구법승들 파미르고원을 넘다 - 떠날 때는 불법이었지만, 금의환향한 현장법사의 길 /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28  2566
42    실크로드기행⑧위구르족의 고향 카슈가르 - 단명의 이슬람공화국 그리워하는 2천년 역사의 국제오아시스 타운/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14  2667
41    실크로드기행⑦타클라마칸사막과 오아시스 - 살아서 돌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막, 오아시스로의 전성기는 당나라 때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10  2587
40    실크로드기행⑥위구르족의 성도, 우루무치 - 다양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사는 중국 속 중앙아시아 /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04  2850
39    실크로드기행⑤하서주랑과 둔황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29  2824
38    실크로드기행④실크로드의 관문, 시안(西安)-중국 통일 진나라의 중심지, 주나라 이래 13개 왕조의 수도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23  3072
37    실크로드기행③흉노와 만리장성-흉노는 서역개척과 실크로드를 있게 한 주어이자 직접목적어/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16  2973
36    실크로드기행②한나라 장건의 서역개척 - 2차 서역사행으로 동서간의 무역 이루어지다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11  2967
35    실크로드기행①동서 문명 교섭사의 간선-동서양에 막대한 영향 미친 크나 큰 역사적 유산 실크로드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04  2821
34    신종교(불교)운동17●불교를 배경으로 한 신종교단체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1/11  3492
Prev [1][2] 3 [4][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