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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크로드기행④실크로드의 관문, 시안(西安)-중국 통일 진나라의 중심지, 주나라 이래 13개 왕조의 수도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 시안 장안성에서 필자 이치란 박사(좌에서 두 번째).     © 매일종교신문

 
중국 통일 진나라의 중심지, 주나라 이래 13개 왕조의 수도
 
실크로드는 무역만이 아니고 문화전달의 루트이기도 했다. 무역과 문화전파는 아시아 대륙의 동서를 가로질러서 이루어졌고, 이런 역할을 한 사람들은 상인, 순례자, 승려, 군인, 유목민과 다양한 시대동안 중국과 인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도시 거주자들이었다. 실크로드는 6천4백km에 이르는 엄청난 거리이다. 육상 실크로드는 중국의 비단이 주요 품목이었다. 비단무역은 돈벌이가 되었기에 무역의 주 품목이었지만, 운송물품은 비단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로 거래된 품목의 주요물품은 중국비단이었다.  
 














▲ 기원전 3세기 진시황 능에 조성된 병마용(兵马俑).     © 매일종교신문


비단무역은 한나라(漢 206BC-220AD) 시기에 시작됐다. 실크로드(Silk Road)인 비단길은 육상, 또는 해상을 통한 근대 이전의 동서 교역로를 가리키는 말이고, 여기에서 동(東), 서(西)라 함은 중국과 유럽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실크로드라는 언어의 기원 자체가 중국의 비단이 로마 제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역사를 통해서 더 다양한 교역품들을 전달하는 통로로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문화가 유통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중국 역사학, 교류사, 그리고 중앙아시아사(史)에서 실크로드 연구가 가지는 입지는 크다고 하겠다.
   














▲ 기원후 1세기경의 실크로드의 3대간선 및 5대지선.     © 매일종교신문


실크로드는 단순히 동서를 잇는 횡단 축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남북의 여러 통로를 포함해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한 하나의 거대한 교통망으로 보아야 하며, 이에 따라서 실크로드의 개념 또한 확대되게 된다. 실크로드는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비롯해 수만 갈래의 길로 구성되어 있는 범세계적인 그물 모양의 교통로이다. 이 실크로드의 중국 쪽 관문이 바로 장안(서안)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서안을 시안(Xi'an)이라고 부른다. 시안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였으며, 명나라 이전 까지는 장안(長安 Chang'an)이라고 불렀다. 중국에는 22개의 성이 있고, 네 개의 직할시, 두 개의 특별 행정구, 다섯 개의 자치구가 있는데 시안은 산시 성(陕西省)의 성도(省都)이다. 산시 성은 약 4천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고 중국에서는 17번째로 인구가 많다. 이 성의 주된 도시가 바로 시안이다. 시안은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왕조가 명멸했던 곳이다. 시안 시의 인구는 거의 1천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시안은 중국의 관중 평원(關中平原)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시안의 동쪽에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에는 무관(武關), 서쪽에는 대산관(大散關)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문은 관중과 화베이 평원을 분리하는 동쪽의 함곡관이었다. 이곳은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의 중심지였고, 비옥한 토양과 관개 시설로 진나라는 여러 나라들 중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고 결국 중국을 통일하였다.
 
주나라 이래로 이 지역은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를 포함해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당나라 때 중국의 경제 중심지가 남쪽의 장강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관중 지역은 점차 대운하를 통해 들어오는 물자에 의존하게 되었고, 당나라 말기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을 겪으면서, 다시 황폐해져 당나라를 멸망시킨 주전충이 동쪽 개봉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후에는 항해술의 발달과 더불어 중국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 가면서 명나라 말기에는 관중을 포함한 산시 일대가 이자성이 이끄는 반군 발생 거점이 될 정도까지 퇴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도 중앙아시아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은 잃지 않고 있다. 더욱이 중국 서부지역인 신장성 등의 개발을 위한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
 
시안은 한(漢) 나라 때에 장안으로 이름이 불리어졌고, 전한(前漢), 북주(北周), 수(隋)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당(唐) 왕조 시대에는 장안은 대제국(大帝國)의 수도였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로 발전했었다. 또한 서도(石), 대흥(大興), 중경(中京)으로 불린 적도 있었지만, 송(宋) 왕조 이후 정치·경제의 중심이 개봉(開封)으로 옮겨지면서 장안은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당나라 때 장안은 주변 여러 민족의 도성 건설의 모범으로서 한국의 신라 왕경(王京)이나 발해 상경용천부, 일본의 헤이조쿄(平城京)와 헤이안쿄(平安京)가 장안을 모방해서 세워진 도시이다. 수도(首都)를 가리키는 말인 '장안'은 오래된 도읍인 장안에서 따왔다. ‘장안의 화제’란 말도 당나라 수도 장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21세기인 현재의 시안은 중국에서도 대도시에 속하고 역사도시로서의 비중이 큰 지역이다. 중국역사는 하은주(夏殷周)로 시작되는데, 하나라는 기원전 2070년부터 1600년 까지 470년간 지속되었고, 은나라는 상(商)나라라고도 하는데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부터 1050년까지 571년간 지속되었으며, 주나라는 서주(西周) 동주(東周)로 나뉜다. 서주는 기원전 1050년부터 770년까지 275년간 존속했으며, 동주는 기원전 770년부터 250년까지 514년간 지속되었다. 다음은 춘추전국시대로 들어가는데,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부터 47년까지 295년간이며, 전국시대는 기원전 476년부터 221년까지 255 년간이다. 중국역사에서 이 기간은 연합왕조시대라고 부른다. 이후는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시대가 열리는데, 진나라 한나라 삼국시대가 전개된다.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부터 206년까지 15년간 존속되었지만, 중국의 최초 통일왕조이다. 다음은 한나라인데 한나라도 서한(西漢)과 동한(東漢)으로 갈린다. 서한은 기원전 206년부터 기원후 25년까지 215년간이다. 동한이 다시 세워지기 전에 신(新)나라가 기원후 9년부터 23년까지 14년간 불안한 존속이었다. 동한은 기원후 25년부터 기원후 220년까지로 195년간이다. 동한을 후한이라고도 하는데, 공식적으로 중국불교는 후한 명제 때 공인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 당나라 때, 서역인도구법승 현장삼장 초상화.     © 매일종교신문


중국 역사를 서안과 관련해서 보면, 주나라 때 서안은 풍경(豊京)과 호경(鎬京)을 합쳐서 풍호라고 불렀다. 서주는 기원전 771년 견융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동주를 세웠는데, 지금의 서안이 다시 수도가 된 것은 진나라 때인데, 진나라도 얼마가지 못하고 한나라가 서게 되었는데, 불교는 장건에 의해서 서역을 개척하고서도 한 참 후에 한 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발전하게 된다. 중국 당나라 시대 현장법사는 7세기 인도구법여행을 가서 17년간 서역과 인도전역을 다니면서 성지를 순례하고 인도의 현장에서 인도불교를 견문하고 날란다 대학에서 신유식(新唯識)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인도불교를 중국에 소개했던 것이다. 현장법사가 삼장법사가 되어 중국에 돌아와서 인도의 신불교사상을 역경(譯經)한 것은 중국불교사상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무대가 바로 실크로드의 관문인 당시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인 지금의 시안(西安)이었다.
 
한나라(漢, 기원전 206-기원후220)는 진나라 이후의 중국의 통일 왕조이다. 나중에 삼국으로 갈라졌지만, 한 왕조는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서 건국되었다. 한나라는 약 400년을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의 하나이고, 오늘날에 중국인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한족 역시 이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기원전 247-195)은 한나라(漢)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02-195)이다. 패현(沛縣)의 정장(亭長)으로 있다가 진(秦)에 맞서는 봉기에 가담하고서 진의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키고 한때는 관중(關中) 땅을 지배 아래 두었다가 항우(項羽)에 의거해 기원전 206년 서부 한중(漢中)에 좌천되어 한왕(漢王)으로 봉해졌으나 동진하여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하고 전한을 세웠다. 고조는 군현제와 봉건제를 병용한 군국제를 실시하였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한나라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중요하다. 중국의 불교는 한전불교(漢傳佛敎)라고 말한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서력기원 전후였으며, 처음 전해진 불교는 인도 불교가 아닌 서역 불교였다. 후한(後漢: 기원후25-220) 말인 2세기 후반에는 서역과 인도에서 온 역경승(譯經僧)들에 의해 불경이 한역되기 시작하면서 불교는 중국에서 확실한 기초를 형성하게 되었다.
 
서역불교(西域佛敎)는 서역에서 전개된 불교를 통칭하는데, 서역은 중국에 인접한 서방 지역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통 천산 산맥(天山山脈)·쿤룬 산맥(崑崙山脈)에 둘러싸인 타림분지의 일대와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하여 이에 연속된 투르키스탄(Turkestan) 지역을 포함한다. 이 지방은 동서교통의 요충지로서 옛날부터 문화가 꽃피어 중국의 한나라(漢) 시대에는 서역 36국(西域三十六國)의 이름이 알려졌다. 서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간다라와 카슈미르의 서북인도 지방에서 성행하던 불교가 아소카 왕이 보낸 불교 전도사에 의하여 전해간 것이다. 서역의 불교국으로는 예로부터 대월지국(大月氏國)·안식국(安息國:파르티아)·우전국(호탄)·강거국(康居國:호르기스)·구자국(龜玆國:쿠처)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 나라의 불교는 인도로부터 들어온 인도 불교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서역의 문화에 수용되어 변용된 서역화된 불교이다. 또한 이들 나라들의 서역화된 불교가 거점이 되어 불교는 다시 한나라시대의 중국 사람들에게 최초로 전파되었다.
   














▲ 푸른 눈의 서역승려가 동아시아승려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모습. 투루판 베제클릭 천불동 9-10세기 프레스코 벽화).     © 매일종교신문


중국에 불교를 전파한 전도승과 역경승(譯經僧)들은 대부분 서역인이었다는 점은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의 불교를 이해함에 있어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서역의 여러 나라에 불교가 퍼지게 되면서 동시에 조각·회화·자수·불탑 등의 불교 미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서역과의 길이 트이게 된 것은 전한의 제7대 황제인 한무제 유철(漢武帝刘彻 기원전157-기원전87, 재위141-87은)보통 한나라 무제(한무제)라고 하는데, 한나라의 기틀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 황제이다.
   














▲ 시안에 있는 성황 도교사원.     © 매일종교신문


시안의 종교지형을 살펴보면 모든 종교가 다 존재한다. 시대별로 종교에 따라서 부침은 있었지만, 세계의 큰 종교들은 활동을 했고, 21세기인 현재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의 종교라고 하면 민간신앙에서 출발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중국의 종교라고하면 도교와 유교가 되겠다. 도교는 지금도 중국에서는 막강한 교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교는 동한(東漢25-220AD)시대부터 당(618-907)을 거치면서 오두미도(五斗米道=張陵), 천사도(天师道=张道陵), 정일도(正一道=张天师), 태평도(太平道)등이 출현했고, 동진(東晉317-420), 남북조(南北朝420-589)시대에는 상청파(上清派=魏華存), 모산종(茅山宗), 영보파(灵宝派=葛玄),루관파(樓觀派)가 있었고. 금나라(金朝 1115–1234)때는 전진도(全真道), 진대도(真大道), 태일도(太一道)가 있었고, 송나라 때에는 천심파(天心派), 신소파(神霄派), 청미파(清微派), 동화파(東華派)와 정명도(淨明道)가 있었다. 16-17세기에 들어오면, 오류파(伍柳派)로서 오수양(伍守阳)과 유화양(柳华阳)이 명말 청초에 창립한 내단파(內丹派)계통이다. 이밖에도 20여개 파가 있고, 최근의 신파로는 동파(內丹東派)와 서파(內丹西派)가 출현했다.
 
유교 사당이나 불교사원은 중국 땅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시안에서의 기독교를 좀 살펴보자. 중국에 기독교 전도가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635년 고대 시리아어를 하는 경교(景教Nestorian Church)의 선교사 알로펜(Alopen 阿羅本)이 실크로드를 타고 장안에 왔다고 한다.
 














▲ 당나라 때인 781년에 경교의 선교내력을 적은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教流行中國碑).(서안 비림박물관)     © 매일종교신문












▲ 현재는 불교사찰에서 관리하고 있는 당나라시대 경교사원 대진탑(大秦塔).     © 매일종교신문

1892년에는 영국에서 침례교회가 들어왔고, 1911년에는 가톨릭 대주교구가 설립되었지만, 성당은 1716년에 서안방제각주교좌당(西安方济各主教座堂)이 세워졌고, 1884년엔 성당을 확장했으며, 1966년 문을 닫았다가 1980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 천주교서안총교구天主教西安总教区)     © 매일종교신문

 
중국 땅에 이슬람이 가장 먼저 전파된 곳은 시안이다. 당 고종 李治(628-683)는 651년 이슬람의 신앙을 허용했다.
   














▲ 이슬람 전파와 신앙을 허용했던 당나라 고종 李治.     © 매일종교신문












▲ 742년에 건립된 서안 청진대사(西安清真大寺).     © 매일종교신문

시안을 소개하자면 수 백 페이지 책한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시안은 역사와 문화가 응축되어 있는 13왕조가 왕도로 삼았던 고도이다. 한마디로 시안은 실크로드의 관문이요 출발점이었다. 실크로드는 동쪽에서는 시안이요 서쪽은 지중해의 로마였다. 실크로드는 이 사이에서 이루어진 무역 인적교류 전쟁 등 인간 문명교섭의 총 집결지였다.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사용한 실크로드란 용어는 이제 보편화되었으며, 시안에서 로마까지는 장장 1만2천km에 달하고 직선거리만 9천km에 이르며,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로(草原路)까지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시안은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프로젝트에서 신장성과 중앙아시아 진출의 발진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기업 삼성전자가 반도체공장을 이곳 시안에 설립한 것도 이런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실크로드기행’을 엮으면서 시안은 간간히 소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계속) (이치란 해동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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