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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크로드기행⑬차마고도를 가다 - 중국 사천성에서 미얀마, 티베트, 인도의 벵골만에 이르는 茶馬古道/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 700년경에서부터 1960년대까지의 차마도(茶馬道).     © 매일종교신문

 
중국 사천성에서 미얀마, 티베트, 인도의 벵골만에 이르는 茶馬古道,
그리고 나와 차의 60년 인연
 
나는 차(茶)를 잘 모른다. 하지만, 차를 마신지는 어언 60여년이 흘렀다. 어려서 두륜산 대흥사에 있을 때 작설차(雀舌茶)를 접했다. 주지 스님을 시봉할 때, 이 작설차를 피곤할 정도로 다렸다. 그때는 차 맛을 알리가 없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을 비롯해서 노스님들은 차를 즐겼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차를 마시면서 뭔가 형이상학적인 경지를 음미한듯해서 어린 나에게는 신비했다.
 
어렴풋이 《동다송東茶頌》의 저자 초의선사가 차를 많이 마셨고 주석했다는, 그때는 터만 남은 일지암(만일암)을 가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 비구승 측 소속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대흥사 주지를 했던 박 노장이 사하촌(寺下村)에 법당을 세워서 기거했는데, 그 분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분은 초의선사의 다맥을 계승 한분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당시 어린 나에게는 그저 한 분의 노승으로 기억될 뿐이다. 당시 자의반 타의반의 한 정치인이 이곳에 들렸을 때는 주지 스님 심부름으로 내가 직접 작설차 한 봉지를 여관에 묵고 있는 그분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그 분은 그때 여관 대청마루에서 일행들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중에 그 분이 JP란 사실을 알았다. 지금은 사하촌이 옮겨갔지만, 그때는 대흥사 입구 코밑에 있었다. 마을에서 절로 가려면 내를 건너야 했다. 비라도 많이 오면 다니기가 너무 불편했는데, 이 분의 배려로 다리가 놓여 졌는데, 작설차 한 봉지의 위력은 대단했었다.
 
이후에도 차에 대한 매력을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성장해서 80년대 초 스리랑카에 갔을 때, 스님(비구)들이 실론티(홍차)를 즐겨 마셨는데, 우유와 설탕을 섞어서 마시는 것이었다. 그때는 비구신분이었는데, 오후 불식을 하느라 오후와 저녁에는 배가 무척 고팠다. 그런데 이 홍차에 우유를 타서 마시면 허기를 다소 면할 수 있었다. 물론 실론 차는 영국인들이 개발해서 대규모로 재배하고 보급시켰지만, 대영제국산하의 신민들은 모두 이 홍차를 즐겨 마시게 되었고, 영국에 가면 지금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tea)라고 해서 영국인들은 눈을 뜨자마자 이 차를 마시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영국인의 차가 되었다.
 
나 역시 영국 유학시절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와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될 정도였다. 1980년대 초 영국사회는 동양종교의 열풍이 불고 있어서 일본식 젠(zen)이나 다도(茶道)의 영향으로 참선(명상)과 채식 그리고 녹차를 마시는 영국인들도 제법 되기는 했다.
 
중국에서 생산된 차는 실크로드 시대부터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로마까지 중국에서 차(차이)가 들어 왔지만, 영국지배를 겪으면서 차가 더 확대 보급되었다. 영국은 17세기경 처음 중국에서 차를 수입했는데,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을 일으킬 정도로 차수입이 초과하자 인도에서 비밀리에 아편을 재배 중국에 밀매해서 무역균형을 맞추려하자 아편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차는 큰 충돌을 불러일으켰고, 영국은 실론과 아삼에서 차를 재배하게 되었다.
 
육우(陸羽,733~804)는 중국 당나라의 문인인데,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에 관한 지식을 정리한 《다경》(茶經) 3권 등을 저술하였는데, 중국의 차 문화는 이처럼 역사가 길다.
 













▲ 중국의 차 문화 시조, 서안시에 있는 육우 동상.     ©매일종교신문












▲ 육우가 지은 《다경》.     ©매일종교신문

 
육우는 현재의 후베이성 톈먼시 출신이며, 3살 때 호숫가에 버려졌는데, 용개사(龍盖寺)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그를 거두어들였으며, 후에 주지의 성을 따라서, '육(陸)'으로, 이름은 점을 쳐 점괘에 따라 '우(羽)'로 하였다고 한다.
 
그는 말더듬이었지만, 웅변에 능하였다. 육우가 어렸을 때, 지적선사는 육우가 불경을 읽으며 승려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육우는 유교를 배우려고 하였다. 이에 지적선사는 육우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 육우는 절에서 도망,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육우는 안사의 난을 피해 강남(江南)으로 피신, 오흥에 암자를 만들고 은거하면서 호를 '상저옹(桑苧翁)'으로 하고, 저서를 집필하였다. 그곳에서 육우는 그곳의 승려인 교연(皎然)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여러 곳의 차 생산지를 돌아다니며 차에 대해 연구하였다. 육우가 은거하는 동안 조정에서 그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10년 후인 780년에 14년 동안의 차 연구를 정리하여 《다경》 3권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운남성에서 나오는 보이차가 유명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전역에서 차가 나올 정도로 중국차는 다양하다. 영국인이나 인도인들처럼 우유나 설탕을 섞지 않고 담백하게 그냥 마신다.
 
인도에 가보면 특히 아삼 차에 우유와 설탕을 섞어서 마시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티베트인들도 중국에서 차를 수입했고 이들도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마신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터키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해 온 차를 마셨는데, 지금은 흑해에서 나온 홍차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이들은 우유를 섞지 않고 기호에 따라서 설탕은 조금씩 넣기도 한다.
 
실크로드 무역에서 비단이 중요한 품목이었지만, 차 또한 중요한 기호음료로서 인기가 있었다. 실크로드 선상에서 비단이나 차나 다 말에 의해서 운반되어지고, 사막지대에서는 낙타가 주로 화물을 운반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란 실크로드에서 중국의 차가 인도나 아라비아 페르시아 이집트 로마까지 전해지는 차 무역의 옛 경로이다. 차마고도는 중국 사천성에서 미얀마와 티베트 그리고 인도의 벵골만에 이르는 과정이다.
 
차와 소금의 운반은 말과 노새가 맡았는데, 중국 사천성과 운남성에서는 미얀마를 거쳐 벵골만으로 또는 티베트로 운반되었다. 말이나 노새 한 마리가 사람과 함께 90kg의 차를 운반했기에 차 무역을 통해서 얻은 이익은 너무나 컸다고 하겠다. 차는 처음 운남성 보이지방에서 생산되었다. 차마도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보이차가 운남성과 사천성을 경유, 티베트의 조랑말로 주로 운반되었기에 송나라 때 차마도(차마고도)란 이름이 명성을 떨쳤다. 운남성 보이차는 전차(磚茶)로 만들어서 운반했다. 전차는 홍차, 녹차, 후 발효차의 잎을 잘게 빻은 것을 틀에 넣어 벽돌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 1908년경 중국 사천성에서 지게로 차를 운반하는 모습.     © 매일종교신문


전차는 명나라 이전의 중국에서 흔히 생산되었고,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전차가 보통 사용되지는 않지만, 보이차 등의 많은 후 발효차가 벽돌이나 원반 등의 형태로 생산된다. 전차는 주로 물에 넣어 우려 마시며, 때때로 물에 넣지 않은 채 식량으로 섭취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전차를 통화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 벽돌(전차)모양의 보이차.     © 매일종교신문


지금도 이 벽돌 차는 중국에서 사천성 아안에서 대규모로 제조되어 티베트에 공급되고 있다. 티베트 불교사원에 가보면 중국에서 수입한 차를 우유를 넣고 끓여서 하루에도 수차례 마신다. 라마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 차 없이는 못살 정도로 차는 일상화되어 있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몽골에서도 이 차는 필수품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차는 인도티베트 중앙아시아 등지에 전파되어 일상의 주요한 기호음료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일본만 하더라도 녹차를 많이 마신다. 고려시대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불교사원에서 승려들은 차를 즐겨 마셨다. 최근에 들어서 우리나라도 문화생활의 향상으로 차 문화가 급격히 발달, 차를 마시는 인구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차를 마시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실크로드 시대에 중국의 차는 매우 이른 시기에 중앙아시아 인도 페르시아 로마(동로마)까지 전해졌다. 중국의 차하면 보이차이다. 보이차(普洱茶)는 중국어 발음으로 푸얼차라고 하는데, 이 차는 중국 운남(윈난)성 남부지방에서 생산한 발효차의 일종이다. 독특한 향과 색을 가지고 있어서 마시는 기호음료일 뿐 아니라 약용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이 보이차를 말이나 당나귀에 싣고, 티베트나 네팔, 인도에 수출한 길을 차마고도(茶馬古道)라고 하는데, 이 보이차의 특징은 흑차(黑茶)에 속한다.
 
이 보이 흑차는 중국 운남성에서 생산된 찻잎을 사용해서 만드는데, 운남성에는 총 26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차를 재배하고 마시고 있다. 보이차의 주요산지는 운남성 시솽반나(西雙版納)와 사모지구(思茅地區)에 있으며 특히 란창강(瀾滄江) 유역이 그 중심지이다. 시솽반나는 태국어를 쓰는 태국인들이 살고 있다. 이 지역의 푸얼차(보이차)가 유명해지자 중국 정부는 도시명도 아예 쓰마오에서 푸얼시로 변경해 버렸다. 푸얼시(普洱市)는 2007년 쓰마오시(思茅市)에서 개명된 이름이다. 중전(中甸)도 같은 이유로 샹그릴라로 변경했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이 보이차가 인기를 누리고 차가 고가에 판매된 적이 있었는데, 현지에서는 저가의 보이차가 한국에 와서는 수십 배의 차익을 얻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 윈난성 다리(大理) 하관 차 공장에서 만들어진 보이 생차.     © 매일종교신문












▲ 뒷면에는 이런 홈 자국이 있다.     © 매일종교신문












▲ 전차(벽돌차)를 끓인 보이차.     © 매일종교신문



이 보이차는 발효차이기 때문에 오래 숙성 될수록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연차가 오래될수록 값도 비싸다는 것인데, 이런 오래 숙성된 차는 구하기가 힘들고 판매 루트가 따로 있어서 구입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통의 보이차는 운남성이나 사천성 등지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로 대별되는데, 생차는 비가 오지 않은 청명한 날, 차 잎을 채취하여 위조(말리는 과정), 살청(푸른빛을 없애는 과정), 쇄청(건조)을 한 모차 잎으로 만든 보이차를 자연 상태로 오랜 세월에 걸쳐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오래 될수록 풍미가 좋아져 수십 년이 지난 것은 고가에 거래 된다. 숙차는 고온고습한 환경에서 인공적으로 빠르게 발효시켜 만든다. 비교적 단시일 내에 보이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보이차는 대부분 숙차이다.
 
하지만, 요즘은 모양이 다양하게 나오기도 한다. 공항이나 관광지에서는 초콜릿 모양처럼 아주 작게 만들어서 원반 모양의 통에 넣어서 판매하는데, 끓이기 편리하게 만들어서 보급하고 있다.
 
실제로 윈난성 성도인 쿤밍에 가보면, 물론 보이차도 재배하지만, 커피도 많이 재배하는데, 중국에서 커피수요가 더 많고 보이차 재배보다도 더 수익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이 보이차에 매력을 느끼고 어떤 효능이 있기에 마시게 되는가이다. 중국인들의 음식을 보면 기름진 음식이 많은데, 음식을 먹고 나서 이 보이차를 마시면 지방분해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차에는 천연 사포닌과 미네랄 류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지방의 용해, 다이어트 효과, 소화촉진, 정장작용, 숙취, 위가 더부룩한 증상 개선, 혈당치의 상승을 억제, 혈액 순환 촉진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면역력 강화 효과와 노화예방, 암 예방, 치아를 강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해서 한방약으로서도 음용된다. 티베트인들도 고산지대에 살면서 야크 고기 등을 먹고 이 차를 마시면 효과가 있고, 몽골인들 역시 고기를 많아 먹다 보니 이 차의 효능이 먹혀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보이차 선전하는 것처럼 오해받을는지 모르겠지만, 보이차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원료 공법 발효에 있어서, 윈난성의 대엽종 차엽이라야 하고, 햇빛으로 찻잎의 수분을 제거하는 쇄청건조(曬靑乾燥)공법을 거쳐야 하며, 정상적인 발효가 진행된 후, 적절한 환경에서 보관되어 온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 윈난성 징홍(景洪)의 한 보이차 가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필자 이치란 박사.     © 매일종교신문


필자가 윈난성 쿤밍에서 보이차 생산지인 보이시와 시솽반나의 징홍시 등을 가봤다. 사실, 이 지역에 간 본래의 목적은 시솽반나에 있는 태국불교와 미얀마 불교 리서치를 위해서였다. 실크로드 연구 또한 나의 리서치 분야였기에 차마고도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보이차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옛 차마고도의 중심지였던 다리(대리大理)→리장(여강麗江)→동 티베트의 샹그릴라(香格里拉)→다오청(稻城)→강팅(康定)→야안(雅安)-사천성 성도인 청두(成都)의 노정을 밟은 적이 있다. 이 지역은 매우 독특한 풍광을 지닌 곳이고, 다리와 이장은 중국의 중앙 왕조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독립 왕국을 한동안 유지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샹그릴라 다오청 강팅은 동 티베트 권으로서 사천성에서 티베트로 가는 주요 루트이고, 이 길 또한 차마고도였다. 지금도 티베트로 들어가는 전차를 야안에서 제작한다고 했다. 다리와 이장은 윈난성에 속하지만, 이곳 역시 티베트와 인접하고 윈난성에서 티베트로 들어가는 차의 길목이어서 차마고도가 있는 중심지역이었다.
 













▲ 다리성(大理城) 앞에선 필자.     © 매일종교신문


다리시(大理市)는 중국 윈난성의 다리 바이족 자치주에 있는 현급시이다. 다리시는 예부터 남조와 대리국의 수도였다. 한나라 때에는 서남쪽 미개민족의 지역이었다. 당(唐)나라 때에는 남조국(南詔國), 송(宋)나라 때에는 대리국(大理國)의 수도가 설치되어 이 땅의 중심지로서 번창했으며, 원나라 왕조의 쿠빌라이가 정복하면서, 대리는 서자 후게치에게 주어져 이후 후게치를 선조로 하는 운남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원나라가 망하자 원나라 일부 후예들이 한반도와 제주도로 망명해서 고려인이 되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리장(丽江)은 윈난성의 다리 나시족의 왕도이며, 현재에도 나시족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또한 나시족 이외에도 라후족, 푸미족, 바이족, 이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족보다 소수민족의 인구가 많은 곳이다. 리장 고성이 있는 구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빠르게 부흥이 이루어진 곳이다. 다리와 리장은 중국에서는 유일하게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물밀 듯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한번쯤 가볼만한 곳으로 관광지는 이런 곳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재미있는 지역이었다. 차마고도에서 이 두 지역은 중심지로서, 다리에서는 지금도 보이차가 제조되고 있었는데, 옛날에는 티베트로 들어가는 전차를 이곳에서 집배(集配)했던 중계무역지이기도 했다.
 













▲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차마고도의 한 계곡마을.     © 매일종교신문


리장을 벗어나면 샹그릴라로 향하는데, 티베트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샹그릴라시(香格里拉市)는 중국 윈난성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에 위치하는 현급시이다. 티베트에서는 캄 지방 남부이다. 자치주의 주 정부의 소재지이다. 티베트어로 걸탄이라고 칭해지며 티베트 문화권의 남동단에 있고, 북쪽은 더친(徳欽), 남쪽은 여강과 연결되는 젠장공로(滇蔵公路)에 있어서 요충지가 되었다. 티베트 사원 송쳉링사가 유명하다. 또 사나운 성격으로 알려진 티베트견의 산지이기도 하다. 이곳을 상상의 모델로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튼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1933)》이라는 작품을 썼다고 한다. 제임스 힐튼은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샹그릴라를 쿤룬(Kunlun)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숨겨진 장소에 소재하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히말라야의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천국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샹그릴라 사람들은 평균적인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거의 불사(不死)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상상에서 우러난 동양(Orient)에 대한 이국적 호기심을 담고 있다. 샹그릴라 이야기는 티베트 불교에 전승되는 신비의 도시 샹바라(Shambhala)에 기초하고 있다.
 













▲ 샹그릴라를 이상향으로 묘사한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 1933)》의 작가 제임스 힐튼 James Hilton (1900–1954).     © 매일종교신문

 
차마고도를 다니면서 이들 지역의 사람들은 실제 차를 얼마나 마시는가 하고 살펴봤더니, 모두들 차를 즐겼지만, 젊은 사람들은 커피나 콜라 같은 음료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차를 마시는 인구는 절대다수이고, 티베트인들은 중국산 차를, 신장성 위구르 족들은 터키 흑해산 홍차를 마시고, 인도인들은 아삼차를 마시며 스리랑카는 자국에서 생산된 실론티를 주로 마시고 있었다. 나는 요즘 중국의 보이차는 물론 아삼차 실론티를 즐겨 마시고, 최근에는 터키 흑해산 홍차에 반해버렸다. 아무것도 섞지 않고 마시는 흑해산 홍차 맛은 와인 보다도 더 맛이 개운하고 은근히 향 맛이 나는 운치가 있다고나 하겠다. 이래서 옛 사람들은 차를 마셨나 보다하고 이제야 다도(茶道)의 멋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계속)
(이치란 해동 세계 불교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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