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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크로드기행⑯실크로드와 말(馬) - 실크로드 선상에서 화물운반수단으로 사용된 말은 조랑말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 내몽골 울란하오터에 있는 칭기즈칸 사당 광장의 말을 탄 칭기즈칸 동상 앞에선 필자 이치란 박사.     © 매일종교신문


실크로드 선상에서 말과 낙타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온 동물이 말과 낙타였다. 실크로드 시대에 말과 낙타는 전쟁 통신 운반 등의 목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말이나 낙타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이다. 또한 인간이 야생의 말이나 낙타를 길들여서 인간에 유용하게 사용해온 역사도 꽤나 길다. 이렇게 인간과 함께 해온 말과 낙타를 알아보는데, 우선 말(馬)부터 리서치를 해보자.
 
지금 지구상의 모든 말들은 길들여진 말이다. 현재는 야생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말의 조상은 원래 야생마였던 프르제발스키 말(Przewalski horse)이라고 한다. 이 말은 몽골과 중국의 초원지대에서 서식하였으나, 말의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야생상태로는 멸종되었다. 다만 동물원에서 관리되고 있을 뿐이며, 야생상태였던 시기의 야생마는 화석으로만 남아 있으며, 만주와 한반도에도 서식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 말의 존재를 찾아서 탐험을 한 사람이 러시아의 군인이었던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였다. 그가 1879년에 야생마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최초의 야생말을 ‘프르제발스키’라고 부르고 있다.
 













▲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프르제발스키(1839~1888)는 러시아의 지리학자로서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의 탐험가였다.     © 매일종교신문


말의 역사를 살펴보면, 말의 조상이 지구에 나타난 것은 대략 5천만 년 전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말과는 몸집 크기가 개(犬) 정도 크기였으며, 발가락도 여러 개 달려 있고, 달리기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말도 처음엔 발가락이 다섯 개였지만, 필요에 의해서 한 개로 진화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말의 종류도 원산지의 기후, 토양과 환경여건에 따라 그 외모와 습성이 다양하며 인간의 필요 목적에 따라 많은 개량종의 탄생을 거듭해, 현재 약 200여 가지의 품종이 있다고 한다.
 













▲ 한 무제가 탐냈던 페르가나 산의 한혈마(천리마) 품종.     © 매일종교신문


실크로드 선상에서 화물운반수단으로 사용된 말은 대개 조랑말인데, 조랑말은 체구에 비해 다리가 짧고 튼튼해 보통의 큰 말보다도 훨씬 무거운 짐을 부담할 수 있는 튼튼한 체력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기원전 4천~3천년 경, 유라시아에서 군마가 쓰였다는 증거가 있으며, 기원전 2천년 경엔 전차가 발달했고, 전투의 효율성을 위해 안장·등자 등이 발명됐다.
 
실크로드 역사 2천년에서 말이 등장한 것은 한 무제가 장건을 시켜서 서역개척을 하면서부터이다. 물론 흉노는 말을 타고 중국변방을 자주 침범해서 약탈을 해갔지만, 흉노의 말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장건은 우여곡절 끝에 서역을 탐험하고 귀국한 후, 한 무제에게 한혈마의 존재를 보고했다. 이에 한 무제는 흉노를 견제하고자 한혈마를 수입하고자 대완국에 특사를 파견했다. 대완국은 지금의 우주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의 페르가나 지역인데, 한혈마는 명마로써 하루에 천리(400km)를 달리는 천리마(적토마)였다. 한 무제는 이에 기원전 104년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지휘하는 원정군을 보내서 대완을 정벌하고 마침내 한혈마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한 무제는 한혈마를 얻은 후, 감탄하여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짓게 하였으며, 한혈마를 <천마(天馬)>라고 칭찬하였다. 지금의 중국 간쑤 성(甘肅省) 우웨이 시의 뇌조묘 뢰대한묘(雷台漢墓)에서 나온 청동으로 된 <마답비연상(馬踏飛燕像)>은 이 한혈마를 모델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동한시대에 제조된 나르는 한혈마 동상(馬踏飛燕).     © 매일종교신문


한 무제가 전쟁용으로 한혈마에 집착했는데, 말이 전쟁용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유라시아에서 기원전 4천 년 전부터라고 하는데, 증거에 의하면, 기원전 2천5백 년 전, 수메르(Sumer) 인들의 삽화에서라고 한다. 오늘날 이라크 남부지역인 수메르 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며, 수메르인은 대략 기원전 7천 년 전 부터 수메르 지방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 수메르 우르지방의 군기(軍旗)에 그려진 초기 전차, 기원전 2600년.     © 매일종교신문


기원전 1600년경이 되면 마구(馬具)는 개선되고 마륜전차(馬輪戰車)의 디자인은 전투에 편리하게 개량되는데, 오늘날의 중동지역에서 부터라고 한다. 기원전 1350년 정도 되면 기병대(騎兵隊)의 전술이 향상되고, 기원전 360년경에는 마술(馬術)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역사가요 저술가이며 기병대장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크세노폰(430~354BCE)은 마술(馬術)에 대한 광범위한 논문을 기술했다.
 













▲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 소크라테스 제자로 플라톤과 동문수학했다고 한다.     © 매일종교신문


실크로드 시대가 되면, 마술(馬術)은 극치에 달했으며, 안장.등자도 보다 기술적인 면에서 혁신적인 개량이 이뤄졌다. 우리가 접한 실크로드의 역사에서, 말의 이야기가 본격 등장하지만, 이 무렵이면 이미 말에 대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밝혀지고 말이 화물의 운반용뿐만이 아니라 전투용으로도 이미 활용되고 있었다. 말의 다양한 종류와 크기에 따라서 전쟁규모에 맞게 동원되었고, 활용되었다. 말의 종류에 따라서 승마용, 속도용, 아니면 정찰용과 전투용으로 나누어서 분류되었다. 말과 더불어서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데 이용된 것은 노새와 당나귀였다. 노새는 암말과 수컷 당나귀사이에서 태어난 동물로 물건운반용으로는 제격이었다.
 













▲ 나폴레옹의 전투시의 경기병들.     © 매일종교신문


말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들에게는 그야말로 필요불가결한 구명용(救命用)이었다. 몽골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의 문화에서 기병과 마차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무슬림 전사들은 경기병(輕騎兵)이었고, 북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서 맹위를 떨쳤다. 경기병은 가벼운 무기와 갑옷을 입고, 정찰 소전투 습격을 위주로 창 검 활로 무장했다. 경기병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에서는 드물게 사용되었으나,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과 유목민 군대에서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훈족, 튀르크족, 몽골인과 헝가리인 들은 경기병과 기마궁수들로 훈련되었다. 유럽에서의 봉건제도와 기사도의 쇠퇴로 인하여 경기병은 유럽 대륙 국가들의 군대에서도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들 중 많은 수는 이전시기에는 활을 사용하였다면 그 당시에는 화기로 무장하였다. 이에 반해서 중기병(重機兵)은 적의 부대와 서로 맞붙어서 싸우는 기병의 한 종류로, 일명 충격기병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장비는 지역과 역사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크고 든든한 말과 함께 사슬갑옷, 찰갑옷(비늘갑옷), 쇠사줄로 엮어 만든 갑옷 또는 금속박판을 엮어서 만든 갑옷과 검, 곤봉 또는 창을 들고 있었다.
 













▲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는 일본의 사무라이 중기병들로 1293년경의 삽화.     © 매일종교신문












▲ 오스만 제국의 맘루크(근위병)중기병, 1550년경.     © 매일종교신문

그리스와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는 중기병이 중용되었다. 역사상 마케도니아 정예기병인 헤타이로이 기병은 첫 번째 진짜 중장기병으로 인정되었으며, 이 기병은 훗날 필리포스 2세의 아들인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큰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주로 적 측면에서 기병돌격을 사용하는 데 쓰였다.
 













▲ 정예기병으로 마상에서의 알렉산더 대왕.     © 매일종교신문


중기병은 한동안 각광을 받았으나 화약이 발명되면서 중기병의 위력은 쇠퇴하고 유럽에서는 경기병이 다시 부각되면서 아메리카대륙의 침략에 활용되었다.
 
실크로드선상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사건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몽골군의 진격일 것이다. 몽골군의 전술과 조직은 초원의 유목민에 지나지 않았던 몽골 인들이 몽골제국(1206-1368CE)을 세우는 견인 역할을 했다.
 













▲ 페르시아의 역사가인 라시드 알딘 파들알라 하마다니(1250~1318)가 묘사한 몽골 기병대의 활 쏘는 모습.     © 매일종교신문












▲ 제4대 몽케 칸 시대의 몽골제국 판도(1251-59).     © 매일종교신문

몽골제국의 역사를 논하려면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방대하다. 차회에서 분야별로 리서치하기로 하고, 몽골제국의 역참제도인 얌(yam)제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역참제도는 몽골제국의 군대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몽골제국에서 극대화된 군사정보 전달을 위한 관원(官員)의 숙식과 마방(馬房)이 있던 말의 중계 정거장이었다. 200Km 마다 역참이 설치되었고, 전달자(使者)는 정보를 전달하고 일정한 역참에서 쉬는 동안 제2의 전달자는 또 다른 역참을 향해서 말을 타고 달려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정보는 아무리 먼 거리도 빠른 시간 내에 전달되었다. 각 중계역에서는 말들과 음식과 쉼터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서 효율적이었다.
 
얌(yam)이라는 이 역참제도는 칭기즈칸이 제정한 비밀 성문법(成文法)인 야삭(Yasaq)에서 기원하고 있다. 야삭은 몽골제국의 기본 법률이었다. 칭기즈칸은 차남 차카타이를 야삭을 지키고 수행하는 수호자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이 역참제도는 황제의 직속 기관으로 필요에 따라서 우선순위로 업무가 처리되었다. 거의가 군사업무였지만, 처음엔 무역용으로 통신이 무료로 이용되었지만, 상업상의 남용으로 몽케 칸 시대에 오면 이용자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역참의 전달자는 파이자(牌子)를 지니고 이를 증표로 삼았는데, 이 같은 상세한 기록은 유럽의 몽골 제국 여행가들에 의해서 기록되고 있다.
 
수도사였던 요하네스 데 플라노 카르피니(Iohannes de Plano Carpini:1182∼1252), 기욤 드 뤼브룩(Guillaume de Rubrouck1220~1293)과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그리고 오도릭(Odorico da Pordenone1286∼1331) 신부 등이다. 이들은 몽골제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기록하였다. 역참제도는 몽골제국에서 처음 실시한 것은 아니며, 페르시아와 로마에서도 있어 왔다. 킵차크 칸국 다음엔 러시아 차르국(1547~1721)에서도 실시했으며, 중국에서는 일찍이 존재해 왔지만, 원 제국 때, 가장 활발하게 운용되었다. 중국경내에만 1496곳이 있었고, 티베트와 함께 공동운용한 곳은 28곳이며, 작은 역참은 8곳 정도였다고 한다.
 













▲ 페르시아어 파그파 문자와 위구르어로 된 몽골제국의 야경순찰 패자.     © 매일종교신문












▲ 파그파 문자로 된 황제가 내린 공식 패자.     © 매일종교신문


미국에서도 조랑말 속달 우편(Pony Express)이 잠시 이용됐는데,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18개월이 걸리던 우편배달 기간을 10일로 단축하였다고 하는데, 1861년 전신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 조랑말 속달 우편소인 1860년.     © 매일종교신문

 
남아메리카에서도 잉카길제도(Inca road system)로 4만km에 달하는 매우 긴 길이 있다. 멕시코와 컬럼비아에서 페루에 있는 마추픽추(machu picchu)의 잉카 문명 유적지까지 연결되는 교통수송 무역 군사 종교적 목적으로 이용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말에 대해서 좀 더 부연하면, 말의 수명은 대략 25세 정도이고, 번식은 3세부터 15-18세까지이다. 임신기간은 10-14개월이다. 암말은 일생 동안 5-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말은 눕지 않는 버릇이 있는데, 말은 서서 잘 수 있고, 누워서 잘 수도 있다. 말이 선 자세로 졸거나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특수한 구조의 다리 인대가 무릎과 발목의 관절을 무의식 상태에서도 단단히 고정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말뼈를 건강식품으로 상품화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야생 상태의 말을 관찰하면 하루 중 14시간은 들판을 배회하며 풀을 뜯고, 6~8시간은 서서 쉬며, 1~2시간은 동료들과 장난을 치거나 이성간에 구애행위를 하며 놀고, 1시간 정도는 누워서 쉰다. 보통은 깊은 밤에 잠시 누워 자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할 기회가 없어서, 말은 서서 자는 줄로만 안다. 말은 주로 승마·경마·역용(驛用)에 이용되지만, 고대에는 북유럽의 리투아니아인과 에스토니아인은 말 젖을 마셨고 몽골에서는 칭기즈칸 시대 말 젖을 마시는 일이 귀족의 특권이었다.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말 젖을 열을 내리는 특효약이라 하여 상류사회에서 애용하였다. 지금도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소 젖·양 젖과 마찬가지로 말 젖을 즐겨 마신다. 몽골에서는 마유주라고 하여, 하루에도 수차례 마시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몽골이나 일부 유럽국가 들에서는 말고기를 먹는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말은 경주용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경마에서 은퇴한 말은 혈통이 훌륭한 말의 경우 혈통보존용으로 예우를 받으며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며 그렇지 않은 말들 역시 도축되지 않고 사극(시대극) 촬영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말은 가축 중에 도살이 가장 적고 말이 죽으면 사람에 준한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문화와 관련된 말의 이야기는, 페가수스 별자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말이다. 페가수스 부근에는 조랑말자리가 놓여 있기도 하다. 승마는 올림픽 공식 경기 종목이며, 강남스타일에 등장하는 춤은 '말 춤'으로 수억의 클릭수를 기록하고 있다.  














▲ 최초의 야생마 원조로 알려진 프르제발스키 말들.     © 매일종교신문


우리나라와 말의 관련을 보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 후기 구석기의 거주지에서 프르제발스키 말의 뼈가 발굴되었다. 고구려는 기마민족이라고 할 정도로 말을 잘 탔다. 말은 십이지 중 7번째인 '오(午)'에 해당된다. 낮 12시를 가리키는 '정오(正午)'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고려시대 제주도에서는 대량으로 말을 키웠다. 지금도 제주도에 가면 말을 탈 수 있다. 말의 꼬리는 '말총'이라 하며, 갓과 망건 등을 만드는 데에 쓰였다. 조선시대에는 교통수단으로 말을 이용하였으며, 역을 중심으로 '파발'을 운영하였다. 사람들은 경마를 통해서 여가를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도박으로 패가망신을 당한 사람들도 출현하고 있다.(계속)
(이치란 해동 세계 불교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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