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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크로드기행⑱실크로드의 여행가들 - 무역, 군사적 목적, 종교·문화적 교섭 위해 생명 담보하며 다닌 먼길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 부하라의 방주(方舟) 성 앞에선 필자 이치란 박사.     © 매일종교신문

무역, 군사적 목적, 종교·문화적 교섭 위해 생명 담보하며 다닌 먼길  
 
실크로드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한 무제의 특명에 의해서 장건 장군이 서역개척을 한 이후이지만, 그 보다 훨씬 전에 서역 길을 개척한 사람은 주 왕조(1046BC∼256BC) 제5대 왕인 서주 목왕 희만(西周 穆王 姬滿, 재위:977BC~922BC)이었다. 목왕은 목왕팔준(穆王八駿)이라고 해서 특별한 말을 타고 다녔는데, 흙을 밟지 않을 정도로 빠른 <절지(絶地)>, 새를 추월하는 <번우(翻羽)>, 하룻밤에 5천km를 달리는 <분소(奔霄)>,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하는 <월영(越影)」, 빛보다 빠른 <유휘(踰輝)>와 <초광(超光)>, 구름을 타고 달리는 <등무(謄霧)>, 날개가 있는 <협익(挟翼)>등의 8마리의 말을 몰아 견융 등의 이민족을 토벌했다고 한다.
 












▲ 서주 목왕이 곤륜산에 가서 서왕모를 만난 요지연도(瑤池宴圖), 조선시대 그림.     © 매일종교신문

바빌론의 여왕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서쪽의 곤륜산에도 들러 서왕모(西王母)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작자미상의 《목천자전(穆天子傳)》에 정리되어 있다. 《목천자전》은 신화, 전설의 요소를 많이 포함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穆天子傳》은 《周王遊行》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최초의 여행서로 간주하고 있다.
 
다음은 전한 때, 장건(張騫,?~기원전114년)장군인데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서 월지와의 동맹을 위해서 서역개척에 나선 것은 기원전138∼125년이다. 장건에 대해서는 이미 몇 차례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의 소개는 하지 않겠다. 중동에서는 기원후40∼70년 사이에 홍해에서의 여행기인《해항행기(海航行记) The Periplus of the Erythraen (=Red) Sea》가 있다. 홍해에서 이집트와 인도 서해안을 탐험한 기록이다.
 












▲ 홍해에서 인도서해안을 항해한 여행지도.     © 매일종교신문

다음은 연대순으로 보면, 기원후73-102년 사이에 서역에서 중국의 지배권을 확보한 후한 시대의 반초(班超,32년∼102년) 무장이다. 그의 선임자였던, 곽거병(霍去病)이나 위청(衛青)처럼 타림 분지에서 흉노족을 효율적으로 방어했으며, 광무제의 통치기간에 기마부대를 이끌고 흉노를 격퇴하고 서역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전한의 장건의 활약 이후 끊겼던 실크로드를 다시 개척하여 후한과 서역의 교역길을 열었다. 그의 원정대는 파르티아와 카스피 해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 신장성 타림분지의 카슈가르에 있는 반초무장 동상.     © 매일종교신문

다음은 반초 휘하부관으로 로마에 파견된 한나라의 대사였던 감영(甘英,생몰년 미상)이다. 기원후 97년 서역도호인 반초의 명에 따라, 당시 대진(大秦)으로 불리던 로마와의 국교를 개척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으며 감영은 군과 함께 파르티아(이란) 왕국의 서쪽 국경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이후는 중국의 법현법사(法顯法師)이다. 법현법사는 399∼413년 사이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인도에 들어가서 불경을 구해 온 중국의 고승이다. 그는 《불국기》를 남겼다. 법현이후에는 북위(北魏)의 둔황출신인 송운(宋雲)법사이다. 그는 518∼521년 사이에 파미르고원과 서역에 가서 불경을 구하고 정보를 얻는 임무를 맡았다. 그 이후에는 현장법사(玄奘法師)이다. 현장삼장은 당조의 승려로서 629∼645년 사이에 인도에 들어가서 날란다대학에서 공부하고 많은 불경을 가져와서 한역한 삼장법사로서, 중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학승이었다. 현장삼장은 《대당서역기》를 저술했다. 다음은 신라출신의 혜초법사로서 그는 713∼741년 사이에 해로로 인도에 갔다가 페르시아 등지를 둘러보고 육로로 중국으로 돌아와서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다. 연대기적인 순서에 의하면 다음은 안서절도사였던 고선지(?∼755) 장군 휘하에 있던 두환(杜环)이란 군인으로서, 그는 751∼762년 사이에 카자흐스탄의 탈라스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서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갔다가 페르시아 만과 인도양을 경유, 광동성으로 돌아온 과정을 기록한 《경행기經行記》를 남겼다.
 
이밖에도 많은 동서양의 인물들이 동서양쪽을 탐험 또는 여행을 통해서 동서 교섭의 역사를 꾸며왔는데, 다음은 주로 유럽 쪽에서 동쪽 아시아의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이나 몽골에 왔던 수도사였던 요하네스 데 플라노 카르피니(Iohannes de Plano Carpini:1182∼1252), 기욤 드 뤼브룩(Guillaume de Rubrouck1220~1293)과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 오도릭(Odorico da Pordenone1286∼1331) 신부와 이븐 바투타(Ibn Battuta,1304년~1368년)등을 탐구해보자.
 












▲ 교황 인노첸시오(이노센트) 4세가 도미니크회의 수사와 프란체스코회의 수사에게 몽골에 전달할 친서를 내리는 장면.     © 매일종교신문

카르피니 수도사는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몽골을 여행하고 몽골제국의 대칸 궁정에 까지 가 본 유럽여행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교황 인노첸시오(이노센트) 4세는 카르피니 수도사를 사절단장으로 선택했는데 카르피니는 그때 나이가 65세였다고 한다. 그는 교황의 특사로서 서신을 휴대하고 몽골제국의 대칸을 만나러 갔다. 그는 현재의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를 지나고 몽골군사가 점령한 카니우에 들어갔다. 드네프르 강, 돈 강과 볼가 강을 건너서 바투의 군영에 도착했다. 바투(1207~1255)는 후에 몽골제국 킵차크 칸 국의 칸(재위:1242~1255)으로 칭기즈 칸의 손자이며 주치 칸의 차남이다.
 












▲ 칭기즈칸의 손자로서 킵차크 칸국의 칸이었던 바투.     © 매일종교신문












▲ 몽골제국의 제3대 칸이었던 귀위크 대칸.     © 매일종교신문


바투는 카르피니 일행을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까지 안내했다. 사절단은 106일간 3천 마일을 여행한 끝에 몰골제국의 수도에 도착했고, 그 무렵 몽골제국의 제 2대 칸인 우구데이 칸(오고타이)이 죽고 나서, 귀위크(구육) 칸이 몽골제국의 각 지역에서 모여든 대표자회의인 쿠릴타이에서 제3대 대칸으로 선출, 즉위할 무렵이었다. 교황의 초청에 대해서는 그는 거절하고, 교황과 통치자는 자신에게 직접 와서 충성을 맹세하라고 했다. 몇 달간 대기한 끝에 대칸은 몽골어 아랍어와 라틴어로 된 편지를 교황에게 주어서, 이들 일행은 눈 위에서 자면서 간신히 돌아왔고, 프랑스 리옹에 있던 교황에게 보고되었고, 카르피니는 몬테네그로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보상받았다고 한다. 그는 《몽골제국여행기Ystoria Mongalorum》를 남겼다.
 












▲ 귀위크 대칸이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게 보낸 편지.     © 매일종교신문

기욤 드 뤼브룩(Guillaume de Rubrouck1220~1293)은 프랑스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여행가다. 1253년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해 5천마일의 긴 여행 끝에 1254년 몽골에 도착하였다. 1255년 트리폴리에 귀환하여, 후에 동양 각지의 지리·풍습·종교·언어 등을 저술한 여행기를 썼다.
 












▲ 기욤 드 뤼브룩 수도사가 몽골제국까지 갔다 온 여정.     © 매일종교신문

그는 《東方諸国旅行記》를 남겼다. 그의 여행기는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두타의 여행기와 함께 3대 여행기로 평가받고 있다. 뤼브룩은 프랑스의 루이 9세와 7차 십자군 전쟁에 함께 참여했으며, 1253년 루이 9세는 뤼브룩에게 콘스탄티노플(동로마)을 떠나서 타타르(몽골)인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사명을 띠고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돈강을 건너서 몽골 제국의 킵차크 칸국의 제2대 칸(재위:1255~1256)이 된 사르타크(Sartaq,1223~1256)를 만났고, 사르타크는 뤼브룩을 아버지인 바투 칸에게 보냈고, 바투 칸은 기독교로의 개종은 거부했지만, 그의 대사와 함께 뤼브룩을 카라코룸에 보내서, 몽골 제국의 제4대 대칸(재위:1251~1259)몽케를 만나게 했다.
 












▲ 몽케 대칸 시대의 몽골제국 판도(재위:1251∼59).     © 매일종교신문

그는 1253년 카라코룸에 도착했고, 그가 말을 타고 지나온 여정은 9천km였고, 1254년 대칸을 알현했다. 그는 그의 여행기에서 카라코룸의 시벽(市壁), 시장과 사원들에 대해서 묘사했으며, 각 종교의 사원구역이 따로 있어서 국제도시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대칸의 궁정에서 유럽인들을 만났는데, 영국인 주교의 조카, 뤼브룩을 위해서 부활절 저녁을 준비한 로렌이란 여자와 대칸의 여인들을 위해서 은세공(銀細工)과 경교(景敎)의 제단 장식을 만드는 프랑스 장인을 만났고, 카라코룸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귀로에 올랐다.
 












▲ 타타르(몽골)복장을 한 마르코 폴로.     © 매일종교신문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동방견문록》을 지은 작가이다.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지역의 방위와 거리, 주민의 언어, 종교, 산물, 동물과 식물 등을 하나씩 기록한 탐사 보고서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일본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동방견문록은 서구인들에게 동방에 대하여 자세하게 언급한 긍정적인 역할은 했지만, 편견과 허구도 있다는 점에서 비평을 받기도 한다.
 












▲ 중국을 여행하고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 칸을 만난 오도릭 신부.     © 매일종교신문

오도릭 신부는 14세기 초 원나라를 방문하고 여행기를 남긴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로서, 여행 중의 견문을 구술시켜 책으로 펴냈는데, 이 여행기는 동양문화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그는 1314년경 동방 선교의 길에 나서, 소아시아·바그다드를 거쳐 호르무즈에서부터는 해협으로 접어들어, 인도·남해 제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후, 중국을 방문하였다. 광저우(廣州)·항저우(杭州)를 경유, 대도(大都:북경)에 이르러 3년 동안 머문 뒤, 육로로 중앙아시아를 횡단, 귀국하였다. 귀국 후 여행 중의 견문을 구술시켜 책으로 펴냈는데, 이 여행기는 M.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동양문화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의 ‘가마우지 고기잡이’라든가 여자의 전족(纏足)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처음으로 서양에 전한 것이다.
 
오도릭(1286~1331)은 젊어서 탁발(托鉢)로 수행하던 청렴한 프란체스코회 사제 출신이었다. 맹물에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고, 몸에는 털로 짠 천과 철갑을 걸치고 맨발로 다녔다고 한다. 오도릭은 중국에 6년간(1322~1328) 체류하였는데, 그중 3년간은 대도(북경)에서 보냈다. 원조의 법제와 의례, 궁전의 건축, 각지 종교 상황, 대한(大汗, 대칸)의 수렵(狩獵), 전국의 역참제도 등에 관해 정확하게 상술하고 있다. 그는 경건한 기독교 사제로서 동방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에 관해 정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중국의 천장(天葬) 관습이나 부녀들의 전족(纏足), 광저우 사람들의 뱀요리, 첸탕강(錢塘江)에서의 가마우지 물고기 사냥 장면 등 색다른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원조의 궁정에서 봉직하는 어의(御醫) 중에는 불승(중국)·라마승(티베트)·도사들과 기독교도들·무슬림들이 함께 어울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다.
 












▲ 오도릭이 축복의 기도를 하고 있는 장면.     © 매일종교신문

오도릭의 《동유기》는 라틴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독일어 등 여러 언어의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년~1368년)는 중세 아랍의 여행가, 탐험가이자 유명한 여행기(리흘라, Rihla)의 저자이다. 그의 여행기는 당대 거의 대부분 이슬람 국가와 중국, 수마트라에 이르기까지 12만km에 달하는 광범위한 여정을 묘사한 것으로 문화 인류학적 가치가 크다.
 












▲ 이븐 바투타 초상화.     © 매일종교신문

이븐 바투타는 모로코 탕헤르의 울라마(법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325년 6월 21세의 이븐 바투타는 고향을 떠나 메카를 순례하고 대상 행렬을 따라 1,500 km를 여행하여 무함마드의 영묘가 있는 메디나에도 도착하기도 하였으며, 중동의 대부분 지역과 페르시아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를 거쳐서 베트남 중국까지 간 여정을 그의 여행기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고 있다.
 
이븐 바투타가 1345년 중국에 도착할 당시의 사정을 언급하면서 화가들이 새로 도착한 외국 일행인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븐 바투타는 중국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많은 장인들이 비단과 도자기를 만들고, 자두, 수박과 같은 과실이 있으며, 사람들이 지폐를 사용하여 거래한다고 적었다. 또한 광저우에서 큰 배를 만드는 모습을 설명하였고, 개구리 요리와 같은 음식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이븐 바투타는 광저우에 있는 동안 칭옌산(清源山)에 올라 유명한 도교 사원을 방문하였다. 그 뒤 북쪽의 항저우를 방문한 뒤 그 때까지 보았던 도시 중에 가장 큰 도시였다고 기록하였다. 이븐 바투타는 당시 항저우를 다스리던 원나라의 관료를 만났는데, 쿠르타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이 관리는 중국 토속의 요술을 대단히 신봉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븐 바투타는 대운하를 이용하여 베이징을 방문하였고, 원 혜종을 알현하였다. 이븐 바투타는 베이징에서 만리장성을 보고 마치 꾸란에 나오는 둘 콰르나인이 곡과 마곡을 막기 위해 벽을 쌓은 것과 같다고 언급하였다. 이븐 바투타는 다시 대운하를 타고 광저우로 돌아갔으며, 잠시 푸저우를 방문한 뒤 귀향길에 올랐다고 한다.
 












▲ 이븐바투타가 30여 년 간, 순례와 여행한 지역의 지도     © 매일종교신문

온갖 고난과 역경을 무릅쓰고 1354년 귀환한 이븐 바투타는 술탄의 명에 따라 이븐 주자이에게 자신의 여행담을 구술하였고, 이븐 주자이는 이를 정리하여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주자이가 집필한 여행기의 원 제목은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인데, 간단히 《리흘라여행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옛 실크로드 지역을 따라서 여행하다보면, 너무나 신기하고 이색적임을 느끼게 된다. 옛 사람들은 동과 서에서 무역을 위해서 혹은 군사적 목적으로 아니면 종교 문화적인 교섭을 위해서 때로는 생명을 담보하면서 까지 먼 길을 다녔다. 지금도 이 길에는 수많은 新 실크로도의 탐험가들이 제각기의 목적을 갖고 열심히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무한한 흥미를 느끼면서 나 또한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데에 긍지를 갖는다.(계속)
(이치란 해동 세계 불교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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