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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보검법사 인도기행-17 / 나가르주나콘다의 향훈을 맡으며




나가르주나콘다의 향훈을 맡으며
사진1:나가르주나콘다로 가는 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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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도 이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제법 많다. 인도인들이라고 해서 다 가난한 것은 아니다. 인도 인구가 12억 이상인데, 제법 잘 사는 인구는 5천만 이상이다. 이제 인도사회도 경제적으로 중산층이 형성되고, 주말이면 여행도 가고 쇼핑도 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인도 정부도 결코 가난한 살림살이가 아니지만, 워낙 인구가 많다보니, 그리고 주마다 경제적 여건과 자원과 생산 상황이 다르다 보니, 편차가 크다. 갈수록 경제여건이 나아지고 있어서, 인도도 잘 살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사실, 불교가 국교였던 인도시대의 부국강병은 대단했었다. 그런 인도문명은 10세기 무슬림의 침입을 받으면서 국력이 피폐해지고, 사회가 어지러워졌다. 이때부터, 불교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는데,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무슬림의 압박과 파괴였다. 이때 불교승려들은 히말라야 산으로 숨어들었고, 티베트로 망명을 갔고, 아니면 환속을 해야 했었다. 그나마 인도 동부지역인 지금의 벵골은 불교의 명맥을 지켜나갔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극히 소수의 종교로 명맥을 지킨 까닭에 지금도 캘커타나 방글라데시에 가면 불교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정말 눈물 나는 이야기다.

지금 중국불교도 풍요를 누리면서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에 불교를 전파했기에 오늘날 중국은 불교가 주류종교로 자리 잡았다. 우리의 불교 현실을 보노라면 갈수록 교세가 약해지고 있음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인도로 눈을 돌려보자.

인도에서 불교는 완전히 소수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성지를 비롯해서 극히 일부의 지역을 제외하면, 불교는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렇게 나가르주나 콘다처럼 그나마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손으로 헤아릴 정도다. 물어물어 찾아간 나가르주나콘다는 멀고도 먼 길이었고, 교통도 불편했고, 댐에 갇힌 섬에 유적이 보존되고 있었다. 과연 이 인도사람들은 나가르주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고 나 혼자만이 생각할 뿐이었다. 부두에서 이 섬으로 가는 배도 부정기적이어서, 언제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행하게도 배를 탈수 있었고, 유적을 탐방할 수 있었는데, 행운이었다. 동아시아와 티베트에서 8종의 조사로 대접받는 나가르주나(용수) 보살이 이렇게 댐 안의 섬에서 답답하게 그 혼을 지키고 있었고, 저 해동 한국에서 온 한 불자의 방문을 기쁘게 맞이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슬슬 쏟아졌다. 종교란 이렇게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드는가 하고 스스로 놀랐다. 누가 반기지도 않지만, 그저 내가 좋아서 찾아보고 싶어서 이렇게 먼 길을 온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나가르주나 큰 스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면서, 영감을 크게 받았다.

사진2: 나가르주나의 쿠티(방)에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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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보살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까지 온 마당에 용수보살의 저서와 사상을 간단하게 일별해 보는 것도 결코 헛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지루하지만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인도에서는 나가르주나의 명성이 사라졌지만, 동아시아와 티베트에서는 가히 절대적인 대승논사란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큰 스님이다.

그토록 유명한 용수보살은 많은 저적을 남겼는데, 거의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용수보살 당대는 물론 사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명성을 듣고 여기까지 찾아 온 것이다. 필자는 이런 저런 상념을 하면서 이런 오지까지 온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용수보살사상을 전공해서 밥을 먹는 사람들도 감히 와보지 못한 곳을 순례했다는 자부심이다. 아무리 신심과 여건이 허락된다고 할지라도 우선 의사소통이 되어야 하고, 용수보살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이기에 아무나 오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무엇보다도 열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相)을 내면서 나가르주나콘다를 찾았던 것이다. 나가르주나콘다를 가본지 몇 개월이 지나서 이글을 쓰지만, 그 감격과 영감은 아직도 나에게 살아있다.

용수보살의 저술들을 살펴보면, 우선 《대지도론大智度論Mahāprajñāpāramitāśāstra》이 있는데, 이 경론을 중국에서는 한역하면서 《智度論》、《智論》、《大論》이라고 했고, 또 《摩訶般若釋論》、《大智度經論》、《大慧度經集要》、《摩訶般若波羅蜜經釋論》이라고도 했다. 영역으로는 <Great Treatise on the Perfection of Wisdom>이라고 했는데, 반야중관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지도론》은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이다.

《大品般若经》은 또 《二万五千颂般若》、《摩诃般若波罗蜜经》、《摩诃般若经》、《新大品经》、《大品经》으로 한역된 경전으로 후진의 구마라지바가 번역했다. 이 산스크리트 원본에 대한 주석을 나가르주나(용수)가 한 것이다. 논서의 명칭 중 ‘지(智)’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na· 반야)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며, ‘도(度)’는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바라밀다)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

용수보살은 인도에서 당대의 대석학이기 때문에 당시 인도에서 새롭게 출현한 이 경전에 대한 주석을 달은 것이다. 용수보살이 우연히 이런 경론을 주석한 것은 아니고, 인도 불교계에서 출현한 모든 삼장을 다 섭렵하고 가장 최신의 불교사상이 집약된 이 경정을 논한 것이다. 이 경은 현재 산스크리트어 원본도 티베트어 역 판본도 존재하지 않고, 405년에 구마라습이 한역한 한역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구마라습의 한역본은 100권으로 되어 있는데, 원문은 10만송(頌)이었다고 전해질 만큼 방대하며, 한역으로 서품(序品)에만 주석을 다는 데 34권이 소비되었고, 이후 1품에 1~3권을 할양하였다. 이것은 구마라습이 초역한 것으로서 만일 전부를 번역했다면 그 10배의 분량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100권속에는 원시불교·부파불교·초기 대승불교로부터 인도사상에까지 이르는 광범한 인용이 있어서 당시의 불교백과사전과 같은 것이었으나, 의도하는 바는 《중론(中論)》과 마찬가지로 반야공(般若空)의 사상을 기본 입장으로 하면서 《중론》의 부정적 입장에 대해서 제법실상(諸法實相: 모든 현상은 공(空)으로서만 진실한 형태를 취함)이라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대승 보살의 실천도의 해명에 힘쓴 것이다.

다음은 《중론中論》이다. 《중론》은 산스크리트어로 (Madhyamaka-śāstra 마드야마카 사스트라)라고 하는데, 용수가 만든 449구의 간결한 게송인 《중송(中頌)》(Madhyamaka-kārikā 마드야마카 카리카)—《중관론송(中觀論頌)》이라고도 한다—에 청목(靑目:4세기 전반)이 주석을 단 인도 불교의 논서이다. 《중론》은 《중관론(中觀論)》이라고도 한다. 4권으로 되어 있는데, 구마라습이 다소 수정을 가해 한역하였다. 《중론》에 포함된 청목의 주석은 《중송》의 여러 주석들 중의 하나이다. 《중송》은 용수의 초기 작품으로서 초기 및 중기 대승불교 사상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그 후의 대승불교의 사상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중론中論मूलमध्यमककारिका, Mūlamadhyamakakārikā,藏文:dbgu ma rtsa ba'i shes rab》은 또 《中觀論》、《中論頌》、《中觀根本論》으로 한역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삼론종의 소의경론이 되어서 종파를 형성했다.

다음의 저술은 《십이문론十二門論Dvāda-śanikāya Śāstra》이다. 이른바 삼론(중론 백론 12문론)의 하나이다. 삼론종(三論宗)은 《중론》·《십이문론》·《백론》의 삼론(三論)에 의거한 중국 불교의 논종(論宗)이다. 삼론(三論)은 도안(道安: 312-385)의 권유로 쿠차국에서 초빙된 구마라습(鳩滅什: 344-413)이 한역한 《대품반야》·《소품반야》 등의 초기 대승경전과 이에 입각한 용수(龍樹:150-c.250) 계통의 중관파 논서들 가운데에, 용수의 《중론(中論)》 4권(409년에 한역)과《십이문론(十二門論)》1권(409년에 한역) 그리고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Aryadeva: 170-270)의 《백론(百論)》 2권(404년에 한역)을 가리킨다. 구마라습 문하의 수재(秀才)들에 의해 삼론이 연구되면서 삼론학파(三論學派)가 형성되었다. 반야공(般若空)의 사상을 교리의 근간(根幹)으로 삼고 있어 중관종(中觀宗)·공종(空宗)·무상종(無相宗)·무득정관종(無得正觀宗) 등으로도 불린다. 중국 불교의 삼론종은 인도 불교의 중관파에 대한 중국 측 명칭에 해당한다. 중국 불교의 삼론종은 인도 불교의 중관파와는 달리 《열반경》의 여래장사상을 수용하여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사상을 전개시킨 것에 특색이 있다. 이처럼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서역인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화 된 불교철학으로 발전하여, 결국 인도사상이 중국을 이긴 격이 되었다.

고구려 요동출신의 승려인 승랑(僧朗:생졸미상 5세기)은 일찍이 중국에 들어가 구마라습(鳩滅什)에서 승조(僧肇)로 이어지는 삼론학(三論學)을 배웠다. 당시의 삼론학은 《성실론(成實論)》이란 소승적(小乘的) 유사상(有思想)에 영향을 받고 있어 본래의 삼론학의 진의(眞意)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승랑은 이런 사상조류를 탈피하여 새로운 삼론(三論)을 설립하였는데, 이 일은 삼론학에서 분수령을 이루어 과거의 삼론학을 고삼론(古三論)이라 부르고 승랑의 순수삼론학을 신삼론(新三論)이라 부르게 되었다. 삼론의 오의(奧義)를 깊이 터득한 승랑은 중국 남방으로 떠나 회계산(會稽山) 강산사(岡山寺)에 머물렀고, 다시 종산(鐘山) 초당사(草堂寺)에 와서는, 정계로부터 은퇴해 그곳에 머물고 있던 주옹(周顒)에게 삼론학을 가르쳐 주옹(周顒)이 《삼종론(三宗論)》이란 책을 저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만년에 섭산(攝山) 서하사(棲霞寺)로 와서 그의 스승이며 주지였던 법도화상(法度和尙)의 지위를 계승(500)하였다. 양무제(梁武帝)는 그의 학덕을 높이 평가하여 천감(天監) 11년(512)에 우수한 학승(學僧) 10명을 선발하여 승랑의 문중(門中)에서 공부를 시켰는데 그때 학승 중 한 명인 승전(勝詮)은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여 섭산(攝山 혹은 攝嶺)에 머물렀고, 또 승전을 계승한 법랑(法朗)이 흥황사(興皇寺)에 있었으므로 승랑의 삼론학 학통(學統)을 섭령흥황(攝嶺興皇) 또는 섭령상승(攝嶺相承)이라 불렀다.

이렇게 계승된 승랑의 삼론학은 법랑의 제자인 길장(吉藏: 549-623) 때에 와서 독립된 종파인 삼론종(三論宗)으로 성립되었다. 길장(吉藏: 549-623)은 삼론학파에 몸을 담아 법랑(法朗)의 제자가 되어 삼론에 각기 주석을 붙이는 한편, 《삼론현의(三論玄義)》를 지어 삼론종을 대성하였다. 가상대사(嘉祥大師)라고 불린 길장은 가상사(嘉祥寺)에 거(居)하면서 용수(龍樹)의 공관불교(空觀佛敎)를 중국식으로 발전시켰다.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은 승랑이 제창한 불교인식 방법으로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이제합명중도설’인데,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이제(二諦)를 종합하여 중도를 밝힌다’이다. 중도(中道)는 불교의 궁극적인 진리를 의미하는데, 이 중도를 밝히는 방법으로 세제(世諦)와 진제(眞諦)의 이제(二諦)를 합명(合明)하는 방법, 즉 정반합지양(正反合止揚)시키는 방법을 쓴 것을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이라 한다.

승랑의 활동 당시, 삼론과 함께 《성실론》을 공부하고 있던 당시의 학승들은 모두 이제를 중시하여, 부처는 항상 이제에 의하여 설법했으며, 모든 경전은 이제를 벗어나지 않으며, 이제를 밝히면 모든 경전을 해득하게 된다는 견해를 가졌다. 승랑도 이 견해에는 같은 입장을 가졌다. 그러나 승랑은 이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들과 견해가 달랐다.

당시의 학승들은 《성실론》의 영향을 받아 이제(二諦)를 이(理: 진리) 또는 경(境: 경지)으로 보는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승랑은 이제(二諦)를 교(敎: 방편 또는 수단)로 보는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은 이제를 어떤 고귀한 ‘이’(理:진리) 또는 ‘경’(境:경지)으로 봄으로써 이제를 어떤 고정된 실체로 여기게 되고 이에 집착하게 되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승랑의 약교이제설에서는 이제를 ‘교’, 즉 고정된 성품이 있다는 집착을 타파하여 중도를 밝히는 ‘방편’으로 보기 때문에, 이제를 실체로 여기는 결함 없이 이제를 통해(즉, 이제를 사용하여) 고정된 성품이 있다는 집착을 제거함으로써 제1의제(第一義諦)인 중도, 즉 진정한 이(理: 진리)가 밝게 드러나게 할 수 있었다. 당시에 승랑의 약교이제설은 공과 중도에 대한 용수의 견해에 진실로 합치하는 것이라고 여겨졌으며, 당시의 중국의 삼론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승랑을 기점으로 하여 승랑 이전의 학파를 고삼론(古三論)이라고 부르고 승랑 이후의 학파를 신삼론(新三論)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삼론에서는 《성실론》을 함께 공부하던 고삼론의 태도를 버리고 오직 삼론에 의거하여 중관(中觀)을 전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불교학계에서는 승랑대사가 고구려 출신이라고 해서 긍지를 갖고 연구에 박차를 가했으나,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그리고 신라불교 일변도에서 승랑 연구는 다소 침체된 감이 없지 않으나, 중국에서 고구려 출신이 신 삼론학의 태두가 되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성실론이란 무엇인가.
《성실론(成實論·Satyasiddhiśāstra)》은 4세기경에 인도의 승려 하리발마(訶梨跋摩· Harivarman)가 소승 아비달마의 교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파 불교의 일파인 경량부(經量部)의 입장에서 저술한 체계적 불교 교의 강요서(綱要書)이다. 경량부(Sautrāntika)는 인도의 부파불교의 한 부파로서 설일체유부에서 갈라져 나온 부파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가 3장(三藏) 가운데 논장(論) 즉 아비달마를 중시했음에 비해 경장(經)을 정량(正量:지식의 바른 근거)으로 삼아 의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경량부'라고 스스로 칭하였다. 약칭으로 경부(經部)라고도 하며, 별칭으로 비유부(譬喻部)·상속부(相續部)·설경부(說經部)·설도부(說度部)·설전부(說轉部)·수다라론(修多羅論)·수투로구(修妬路句) 또는 승가란제가(僧伽蘭提迦)라고도 한다. 세우(世友:1~2세기)의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거하여 경량부가 기원전 1세기에 설일체유부에서 분리하여 성립되었다고 전통적으로 여겨왔는데, 현대의 학자들은 경량부가 기원후 1세기경부터 나타난 비유자(譬喩者) 또는 비유사(譬喻師)라고 불린 설일체유부 내의 이견을 가진 그룹에서 기원하며, 이 그룹에 속한 논사인 쿠마랄라타(Kumāralāta: 3세기 말경)를 거쳐 그의 제자인 슈리라타(Śrīlāta)에 의해 설일체유부에서 분리하여 기원후 4세기경에 경량부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성실론’이라는 낱말 자체의 의미는 ‘삼장(三藏)에 들어 있는 실의(實義: 진실한 도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후진(後秦)시대에 구마라습(鳩滅什·Kumārajīva)이 411년 10월에서 412년 11월 사이에 한역(漢譯)하였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은 전해지지 않고 한역본(漢譯本)만 전해진다. 이후 구마라습 문하의 영재들이 연구하면서 중국 불교의 성실종의 기본 논서가 되었다. 구마라습의 번역 후 200년 동안 불교 교리의 기초학으로서 《성실론》에 대한 연구·강술·주석이 매우 활발하여 중국 불교의 교리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지금 우리가 나가르주나의 저술을 탐색하면서 담론을 펴고 있지만, 이처럼 중국에 한역된 모든 경론은 다 유용하고 또 중국에서 불교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역사적인 과정으로서 연구되고 체계화되었던 불교철학사상의 전개였다.

용수의 저서를 통해서 나타나는 중심 키워드는 중관(中觀मध्यमिका,Madhyamaka)이란 대승불교의 용어인데, 이 용어는 그 기원이 《雜阿含經》 가운데 팔정도의 정견에 그 사상적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용수 즉 중관파의 핵심은 중론이며 중론은 정견에서 비롯되는 중도사상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도사상이란 무엇인가이다. 중도(中道madhyamā-mārga,빨리어 majjhimā paṭipadā、梵文:madhyamā-pratipad)는 불교에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를 말한다.

고타마 붓다는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될 때까지의 6년간 고행정진을 했다. 하지만 고타마 붓다는 출가 전의 쾌락(樂行)도 출가 후의 고행도 모두 한편에 치우친 극단이라고 하며 이것을 버리고 고락 양면을 떠난 심신(心身)의 조화를 얻은 중도(中道)에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자각하였다. 성도(成道) 후 그때까지 함께 고행을 하고 있던 5인의 비구(比丘)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한 것이 중도의 이치였다. 특히 대승불교의 공사상(空思想)에서는, 공(空)을 관조하는 것이 곧 연기(緣起)의 법칙을 보는 것이며 또한 진실한 세계인 중도(中道)의 진리에 눈을 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승경전 중 《반야경(般若經)》과 이에 입각하여 용수(龍樹)가 저술한 논서인 《중론(中論)》에서 명백하게 밝혀 두고 있다. 《중론》 제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에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법·존재 또는 현상은 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다)’의 게송이 있다.

......
諸法有定性。則無因果等諸事。如偈說。
眾因緣生法  我說即是無
亦為是假名  亦是中道義
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

眾因緣生法。我說即是空。何以故。
眾緣具足和合而物生。是物屬眾因緣故無自性。
無自性故空。空亦復空。但為引導眾生故。
以假名說。離有無二邊故名為中道。

是法無性故不得言有。亦無空故不得言無。
若法有性相。則不待眾緣而有。
若不待眾緣則無法。是故無有不空法。

각각의 법이 고정된 성품(定性)을 지니고 있다면 곧 원인과 결과 등의 모든 일이 없어질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설명한다.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법(法: 존재)이다.
나는 이것을 공하다(無)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가명(假名)이라고도 말하며,
중도(中道)의 이치라고도 말한다.
단 하나의 법(法: 존재)도 인과 연을 따라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이 공하지 않은 것이 없다.

여러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겨나는 것인 법(法: 존재)을 공하다(空)고 나는 말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여러 인과 연이 다 갖추어져서 화합하면 비로소 사물이 생겨난다. 따라서 사물은 여러 인과 연에 귀속되는 것이므로 사물 자체에는 고정된 성품(自性 ·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정된 성품(自性 · 자성)이 없으므로 공(空)하다. 그런데 이 공함도 또한 다시 공한데, (이렇게 공함도 다시 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사물이 공하다고 말한 것은) 단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서 가명(假名)으로 (공하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이 공하다고 말하는 방편과 공함도 공하다고 말하는 방편에 의해) "있음(有)"과 "없음(無)"의 양 극단(二邊)을 벗어나기에 중도(中道)라 이름한다.

법(法: 존재)은 고정된 성품(性 · 自性 ·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法: 존재)을 "있음(有)"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법(法: 존재)은 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法: 존재)을 "없음(無)"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떤 법(法: 존재)이 고정된 성품(性相 · 성상 · 自性 · 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법은 여러 인과 연에 의존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연기의 법칙에 어긋난다). 여러 인과 연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연기의 법칙에 어긋나므로 생겨날 수 없고, 따라서) 그 법(法: 존재)은 없는 것(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연기의 법칙에 의해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러한 모순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다음을 대전제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하지 않은 법(즉, 연기하지 않는 존재 또는 고정된 성품을 가진 존재)이란 존재할 수 없다.
— 《중론(中論)》 4권 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 대정신수대장경.
.........
이상으로 용수보살의 저작에 대해서 다소 지루하리만큼 살펴봤는데, 불교공부를 위해서는 다 겪고 가야할 과정이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선종불교 일변도로 아니면 정토 기복 불교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이런 이론불교 불교철학 담론이 없으면, 불교란 종교의 특색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인도의 대승불교학이라고 하면 중관.유식이 주류이지만, 이런 학적 전통은 티베트가 계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화엄교학과 선종불교가 대세가 되었고, 일본은 법화 정토가 강세이다. 하지만 일본의 근대불교학 연구는 서구적인 학문 방법론에 의해서 불교 각 분야에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구미에서도 불교학 연구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구미에서의 불교학 이해수준이나 연구가 솔직히 중국이나 일본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지금 세계불교학계의 추세는 영어를 매개로 한 논문이 아니면 소통이 안 될 정도로 영어는 준 경전어가 되어 있다. 사실, 한문에 정통하면 용수의 저작이나 사상을 완벽하게 섭렵하겠지만, 시대의 흐름과 영어의 위력은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무슨 심포지엄이나 세미나도 영어권 학자들이 참석해야 할 정도로 시대가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영어권 화자들이야 영어에 대한 그 어떤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불교내용의 이해수준은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수준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교의 서구 전파라는 의미에서도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용수보살에 대해서 담론을 하면서, 사실, 인도에서의 용수 연구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산스크리트어 본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문본과 티베트어 역만이 존재할 뿐이다. 일본은 한문본에서 자기들의 일본어로 잘 번역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문원전 연구가 더 소홀해져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티베트어역도 완벽하게 잘되어 있기 때문에 티베트어로 용수의 저작을 공부하면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일본 같은 데에서는 한문원전 연구를 철저히 함으로서,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불교를 학문적으로 한다는 것은 첫째 어학에 부딪치게 되는데, 한문을 알아야 일어, 영어도 알아야 하고, 빨리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더 나아가서는 티베트어 까지 알아야 불교학문의 길에 들어 설 수 있다고 본다. 불교학계도, 남방 상좌부권과 티베트 불교권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권과 구미의 불교학계 등으로 광범위한데, 참으로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사실은 서로 긴밀한 상호연관과 보완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며, 다만 종이 한 장 차이의 견해가 조금 다를 뿐이고, 문화와 관습이 좀 다르다 보니, 전연 다른 전통의 불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의 차이 일뿐이다.

우선 불교의 각 전통 이른바 상좌부 대승권 티베트권과 선종불교권 구미의 불교권 사이에 교류와 이해가 더욱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아무튼 그동안 용수보살을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였던 나로서는 직접 현장을 보고나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리 훌륭한 조사급 승려도 후손들이 잘 모시지 못하면 쓸쓸하다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가르주나 大 삼장의 사상과 저서는 동아시아와 티베트 불교권에서 부처님 다음으로 큰 대접과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을, 나는 나가르주나 큰 스님에게 보고를 드리면서 삼배를 올렸다. 아마도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이곳 오지까지 와서 나가르주나의 향훈을 조금이나마 느끼니까 정말 기분이 상쾌하고 날아갈 듯 법열이 솟구쳤다. 오고가는 교통편의 불편함에도 나는 정말 기쁨이 솟구쳤는데, 종교적 신앙이란 이처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 같다.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당장 무슨 이익이 오는 일도 아니면서, 오직 종교적 신념과 신심 하나로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진짜 흐뭇한 심정으로 나가르주나콘다 섬을 뒤로 할 수 있었다. 거의 2천 년 전의 나가르주나콘다는 수많은 학승들로 초만원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나가르주나의 공(空)을 생각해 봤다. 공으로 변한 나가르주나콘다는 공이 아니었음을 또한 알게 되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했던가.

사진3: 나가르주나콘다 섬을 떠나는 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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