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불교 아카데미
 
 
HOME| 공지사항| 사이트맵
해동연한 아카데미 해동연한 아카데미 해동경전 해동불교대학 선불교 부설기관/웅변
1 2 3

 Total 94articles,
 Now page is 3 / 5pages
View Article     
Name   관리자
File #1    2016021123024902.png (63.1 KB)   Download : 517
Subject   실크로드기행②한나라 장건의 서역개척 - 2차 서역사행으로 동서간의 무역 이루어지다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 대완 지역인 페르가나에 세워진 천리마 동상 앞에 선 필자 이치란 박사     © 매일종교신문

 
2차 서역사행으로 동서간의 무역 이루어지다
 
실크로드를 리서치 하면서 우선 부딪치는 문제가 중국사였다. 개론정도의 중국사 지식 정도로는 실크로드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춘추전국시대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실크로드 역사 그 자체에 대해서는 영문 자료가 풍부했지만, 중국사는 중국학자들의 저술을 주로 여행하면서 읽었다. 이제 장건의 서역개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 중국과 서역 실크로드에 대한 참고자료 일부.     © 매일종교신문


장건의 서역 개척사를 머릿속에 넣고 실크로드 기행을 시작해야 실타래가 풀릴 수밖에 없다. 장건(Zhang Qian 張騫 200-114 BC)은 지금의 산시 성(陕西省) 한중 시(汉中市)에서 태어났다. 한중 시는 지급 시(地级市)로서 인구 4백만 명의 제법 큰 도시이다. 중국은 인구 1천만 명 이상의 도시가 13개나 되고 충칭 베이징 상하이 탄진은 직할시로서 1천만 명이 훨씬 넘는 초대형 급 도시이다. 4백만 명의 지급 시 정도는 흔한 도시로 볼 수도 있겠다.
   














▲ 한중 시의 야경.     © 매일종교신문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중 시는 중국 한나라 때 지방의 중심지였다. 진나라의 붕괴 후, 초패왕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다툴 때는 유방이 항우를 피해 험난한 지형을 가진 이곳에서 힘을 비축하였다고 한다. 3세기 삼국 시대에는 조조가 다스리던 위와 유비의 촉나라와의 국경 지대였으며, 전략적 요충지였고, 제갈량(공명)이 위나라를 치러 갈 때, 사마의(중달)의 20만 군대와 부딪혔던 곳으로, 제갈량은 결국 이곳에서 숨을 거두게 된 곳이기도 하다. 한중을 정벌하러 온 조조는 한중을 가리켜 계륵(鷄肋)이라고 칭하였다고도 한다. 한중은 서촉(西蜀의 관문 땅이기 때문에《초한지》와《삼국지》관련 유적지가 많다. 전한 고조 유방이 활약한 관련 유적지로는 고한대(古漢台)와 배장단(拜将坛)이 있고, 3세기 촉나라 때 유적으로는 무후묘(武侯墓 제갈공명의 묘), 정군산(定軍山), 마초무덤(馬超), 명월협 고잔도(明月峽 古棧道), 무후사(武侯祠) 등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중국사란 너무 방대하고 다뤄야할 인물과 사건이 너무 많아서 이 정도로 하고, 장건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자.
   














▲ 서안의 역사박물관에 있는 장건(200-114 BC)의 상.     © 매일종교신문


사실, 장건은 처음부터 한나라 고급관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시 한나라 조정에서는 북쪽의 흉노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한 무제는 이에 대한 방책으로 흉노에게 밀려서 저 멀리 서쪽 중앙아시아로 쫓겨 간 대월지(大月氏, 지금의 타지키스탄)가 흉노를 복수하려고 한다는 풍문을 듣고, 대월지와의 연합으로 흉노를 정벌할 군사적 필요를 느꼈다. 한 무제는 월지국까지 갈 외교협상 사절단장이 필요했지만, 아무도 자진해서 가려고 하질 않았다. 한나라 영토인 장안(長安)을 벗어나면 흉노가 장악하고 있었고, 월지까지는 너무나 먼 험지였기 때문이다.
 
이때 장건이란 낭관 정도의 하급관리가 자원하여 서역사행의 단장을 맡고 백 명 정도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가 13년 만에야 겨우 장건 자신과 그의 수행원인 감부(甘父) 두 사람만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장건은 10년간 감부와 함께 흉노에게 포로로 잡혀서 흉노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까지 두는 등, 흉노 지도자에게 신임을 얻었지만, 그는 그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흉노지역에서 탈출, 대월지까지 가서 협상을 벌였다. 그렇지만 대월지는 흉노에게 복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곳에서 이미 정착해서 안정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장건은 대월지와의 협상은 실패했지만, 장건은 서역에 대한 많은 유용한 정보를 갖고 오자, 한 무제는 벌을 주기는커녕 태중대부(太中大夫)란 벼슬에 봉하고 감부에게도 봉사군(奉使君)이란 칭호를 부여했다고 한다. 비록 대월지와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장건은 흉노와 서역의 여러 나라와 신독(身毒 인도)에 대한 정보를 한 무제에게 보고하고, 촉도(蜀道)에서 버마를 거쳐서 신독(인도)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전하고, 촉도(사천 성)를 개척하여 대하(박트리아)와의 무역을 건의했다.
 
장건의 서역개척사에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그가 흉노를 탈출하여 대월지까지 가면서 겪은 경험과 서역 여러 나라들에 대한 정보이다. 이 기록은 사마 천(司馬遷, 145-86BC)의《사기(史記)》<대완열전>과《한서(漢書)》<장건열전>에서 알 수 있다.
   














▲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145-86BC).     © 매일종교신문


장건은 월지의 영토였던 대완(大宛 Fergana), 대하(大夏 Backtria), 강거((康居 소그디아나)를 직접 방문했고, 이웃국가들인 안식(安息 Anxi 파르티아=이란), 조지(條支 메소포타미아의 셀레우코스=이라크)와 신독(身毒 인도, 지금의 파키스탄)과 인도-이란계통의 종족으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오손(烏孫)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 장건이 직접 방문했거나 들었던 나라들.     © 매일종교신문


장건은 흉노가 장악한 타림분지를 벗어나서 서쪽의 대완을 향해서 말을 몰았다. 대완은 지금의 기르기스스탄 남서부와 우주베키스탄 남부에 있는 페르가나 지역이다. 필자가 중국 위구르족 자치주의 캬슈가르(카스)에서 기리기스스탄의 오쉬를 거쳐서 타쉬겐트로 가면서 이 지역을 들려봤는데, 정말 기름진 평야로 곡창지대였다. 장건은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을 매우 세련된 사람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란계의 파르티아와 박트리아 인들에 가까운 조상이 그리스인들로 추정된다. 그리스인들은 이 지역을 기원전 4세기부터 2세기 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지금은 터키계인 우주베키스탄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완은 다이유안(Dayuan)이라고 하는데 요나(Yona 그리스) 음역인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장건은 일명 천리마라고 하는 한혈마를 발견하고 한 무제에게 보고했다. 한혈마는 대완마(大宛馬)로 중국에 알려졌는데, 키가 크고 힘이 센 말로서 천마(天馬)라고도 하는데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양마였다고 하는데, 흉노에게 시달리던 한조(漢朝)는 이 대완마를 탐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 무제는 흉노를 견제하고자 했다. 한 무제는 한혈마를 얻기 위해 대완에 특사를 파견하지만, 한의 사신의 오만한 태도에 대완은 제의를 거절하고 귀향하는 사신을 습격해 참살하고 앞서 대완마를 사기 위해 보냈던 보물도 빼앗아버렸다. 한 무제는 이에 기원전 104년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지휘하는 원정군을 보내 대완을 정벌하고 마침내 한혈마를 차지하였다. 한 무제는 한혈마를 얻은 후, 감탄하여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짓게 하였으며, 한혈마를 <천마(天馬)>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지금의 중국 간쑤 성(甘肅省) 우웨이 시(武威市)의 뇌조묘(雷祖廟) 뢰대한묘(雷台漢墓)에서 나온 청동으로 된<마답비연상(馬踏飛燕像)>은 이 한혈마를 모델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하루에 천리(400km)를 달린다는 대완마(한혈마).     © 매일종교신문












▲ 동한(東漢,후한)시대에 제작된 천마상(간쑤성박물관 소장).     © 매일종교신문

중국과 한국의 한문학 작품에서 한혈마는 명마의 대명사로 사용됐고, 소설《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명마 적토마도 이 한혈마의 일종으로 추측되며, 김용의 소설《사조영웅전(射鵰英雄傳)》에서 나오는 곽정의 소홍마가 바로 이 한혈마이다. 말은 실크로드 선상에서 낙타와 함께 너무나 중요한 존재였다. 기회가 되면 말에 대한 리서치를 하기로 하고 장건 서역개척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장건은 대완 왕의 후원으로 대월지국에 도달해서 흉노토벌을 위한 공조를 제안하지만, 외교적 협상은 실패했다. 그러나 장건은 많은 정보를 얻었고, 대하 강거 등지를 직접 방문했고, 주변 여러 나라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 한나라로 와서 후에 유용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장건 자신은 서역에 대한 직접 경험과 확실한 믿음으로 서역 개척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한 무제에게 수차례 건의하고, 장건 자신이 직접 촉도개척을 위해서 파견되기도 했지만, 지방 토후들과의 협력실패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기원전 123년 흉노 토벌 전 때, 대장군 위청(衛靑)을 보좌하여 큰 공을 세운 후, 그 공로로 박망후(博望候)에 봉해 졌다고 한다. 이후 흉노의 침입으로 이광 장군의 구출작전에 늦었다는 이유로 후(候)에서 좌천 되었다. 2년 후, 표기장군 곽거병이 흉노를 막북(莫北)으로 축출했으나, 한나라도 많은 군마를 잃는 등, 피해가 크자, 한 무제는 서역과의 통교를 주장해온 장건을 기용하여 중랑장(中郞將)으로 서역에 다시 파견했다.
 
장건의 두 번째 서역사행의 직접적인 목적은 흉노에게 빼앗긴 둔황지역의 회복을 위한 오손과의 공동대응이었지만, 오손의 내분과 흉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조는 못했지만, 오손의 사신을 비롯해서 서역의 여러 나라들의 사신들이 한조의 수도인 장안에 와서 한나라의 위력을 보게 해서 한조와의 교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특히 한나라 장안에서 파미르 고원 서쪽까지 오아시스로(천산남로)가 개척되었고, 동서 교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서역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보와 지식과 주변에 대한 전문(傳聞)은《사기》와《한서》에 기록됨으로써 동서 문명 교류사의 기초사료가 되었다. 또한 서역개척과정에서 포도.석류.호도(복숭아).호두.목숙.말 등의 서역문물이 중국에 들어왔고, 후에 극동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는 점에서 장건의 서역개척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장건은 2차 서역사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와서 대사절(大使節)의 칭호를 부여받았고, 명예롭게 죽었다고 한다. 장건의 서역개척으로 비로서 동서간의 무역이 이루어지고, 주로 비단이 이 무역의 주류 품목이 되었기에 나중에 이 길을 비단길인 실크로드(실크루트)라고 부르게 되었다(계속). (이치란 해동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No
Subject
Name
Date
Hit
54    실크로드기행 ⑳동로마 제국과 터키 이스탄불 - 600년전 실크로드의 서쪽 센터였던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7/26  3493
53    실크로드기행⑲몽골시대의 실크로드-원나라에 이르러 실크로드 선상을 완전히 장악한 몽골제국 관리자 2016/07/19  3464
52    실크로드기행⑱실크로드의 여행가들 - 무역, 군사적 목적, 종교·문화적 교섭 위해 생명 담보하며 다닌 먼길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7/01  3733
51    실크로드기행⑰실크로드의 사막과 낙타 - 사막서 말보다 진가를 발휘한 낙타/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6/24  2507
50    실크로드기행⑯실크로드와 말(馬) - 실크로드 선상에서 화물운반수단으로 사용된 말은 조랑말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6/13  3564
49    실크로드기행⑮실크로드의 영웅과 종교 - 한 무제, 장건, 알렉산더대왕, 카니슈카대왕. 칭기즈칸 등의 종교관/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6/07  2635
48    실크로드기행⑭실크로드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 주류종교·국교 위상에서 박해·쇠퇴로 인한 소수종교·소멸에 이르기까지/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5/30  3630
47    실크로드기행⑬차마고도를 가다 - 중국 사천성에서 미얀마, 티베트, 인도의 벵골만에 이르는 茶馬古道/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5/16  2791
46    실크로드기행⑫비단길의 역사와 주요 루트 - 그리스 철학 사상과 인도불교, 중국과 페르시아 사상 등 혼합문명이 형성되기까지 관리자 2016/05/09  3811
45    실크로드기행⑪신 실크로드의 탐험가들, 그들은 누구인가 -인문학적 지평 넓히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목적의 여행가들 관리자 2016/04/27  3698
44    실크로드기행⑩사마르칸드와 부하라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4/04  2917
43    실크로드기행⑨인도구법승들 파미르고원을 넘다 - 떠날 때는 불법이었지만, 금의환향한 현장법사의 길 /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28  2967
42    실크로드기행⑧위구르족의 고향 카슈가르 - 단명의 이슬람공화국 그리워하는 2천년 역사의 국제오아시스 타운/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14  3101
41    실크로드기행⑦타클라마칸사막과 오아시스 - 살아서 돌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막, 오아시스로의 전성기는 당나라 때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10  2967
40    실크로드기행⑥위구르족의 성도, 우루무치 - 다양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사는 중국 속 중앙아시아 /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3/04  3302
39    실크로드기행⑤하서주랑과 둔황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29  3210
38    실크로드기행④실크로드의 관문, 시안(西安)-중국 통일 진나라의 중심지, 주나라 이래 13개 왕조의 수도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23  3557
37    실크로드기행③흉노와 만리장성-흉노는 서역개척과 실크로드를 있게 한 주어이자 직접목적어/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16  3390
   실크로드기행②한나라 장건의 서역개척 - 2차 서역사행으로 동서간의 무역 이루어지다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11  3451
35    실크로드기행①동서 문명 교섭사의 간선-동서양에 막대한 영향 미친 크나 큰 역사적 유산 실크로드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관리자 2016/02/04  3289
Prev [1][2] 3 [4][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