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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보검법사인도기행-19 / 푸리와 힌두교




푸리와 힌두교
사진1: 자가낫 힌두사원 앞거리를 한 힌두수행자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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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어디를 가나 힌두교적인 삶이다. 힌두교가 주류 종교이기 때문에 힌두문화에 대한 상식이 없으면, 인도와 인도인의 삶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눈으로 보는 인도의 힌두교는 어딘지 이상해 보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종교로서 문화이고 그들의 삶이기 때문에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고, 이해하고 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처지로 눈을 돌려보자. 4-50년 전의 한국사회의 풍경에서 종교지형을 보면, 그래도 불교가 주류종교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스님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조계사 앞거리에는 하루에도 적어도 1천명 이상의 스님들이 지나가곤했다. 서울시내 곳곳에는 절들이 있었다. 그만큼 불교의 폭이 넓었다. 반면 기독교는 전도를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형국이었다. 원불교도 그 당시에는 성장하는 종교였고, 통일교 등도 시작하는 종교들이었다. 대순진리회도 별로 부각되지 않을 때였다. 지금 21세기인 2016년 7월의 한국의 종교지형을 보자, 그리고 우리 불교의 위상을 둘러보자. 정말 이러다간 불교 없어지는 것 아냐 하는 우려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걱정이 아닐 것이다. 걱정만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뭔가 획기적인 용단과 개혁이 절실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인도로 눈을 돌려보자.

내가 처음 인도에 간 것은 거의 40여년이 다 되어 간다. 힌두교는 그대로이다. 변한 것이 없다. 물론 이슬람의 팽창을 들 수 있고, 불교 또한 확장되고 있지만, 힌두교는 워낙 인도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서인지 단단해 보인다. 나는 푸리에 있는 동안 자가낫 힌두 사원을 거의 매일 가봤다, 안으로 입장은 안 되었지만, 부근까지는 갈 수가 있고, 입구에서 인도인들의 신앙 활동을 엿볼 수 있었는데, 들어가서 보는 거나 마찬가지로 대강 감을 잡게 되었다. 아직도 인도에는 카스트가 존재한다. 헌법에는 카스트가 없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 철폐되고 없어져야할 사회적 악습이지만, 인도사회에서 누천년 내려온 이 같은 계급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카스트제도는 일종의 신분제도로서 인도 땅에서는 몇 천 년 간 지속되어온 문화 사회적 현상이다. 게다가 일정의 신분계층 집단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지나간 시대에 인도에서 정변이 일어나거나 개인적 능력이 탁월하게 발휘되지 않는 한, 계층이동은 불가능했었지만, 현대 인도사회에서는 이 같은 고전적인 신분질서는 무너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의 많은 인도인들은 이런 신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인도에서는 1947년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아직도 중장년이나 노년계층 또는 시골사람들에게는 카스트는 인식 속에 남아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 카스트제의 풍습이 남아있고, 대략 2억 5000만 명 정도의 세계 인구가 카스트제로 인하여 차별을 받고 있다는 통계가 있으나, 아마도 인도가 단연 카스트의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첫 번째 가는 국가가 아닌가 한다.

카스트제도의 원래 목적은 사람을 계급 순으로 나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분업에 목적이 있었다. 성직자, 무사, 경찰관 등 각각의 일을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맡아서 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 카스트인 사람들끼리 결혼하게 한 것도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하였을 때 서로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카스트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뜻이 변질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카스트의 본 목적을 다르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리안이라는 백인들이 들어와서 선주민들인 혼혈족을 지배하고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주민들과 혼혈 뿐 아니라 식사하는 것까지 금하고자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제도화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사진2: 자가낫 힌두시원에서 주관하여 열리는 라타 야트라(乘車節) 축제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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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회에서도 이런 카스트 비슷한 제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 무너지고 평등해졌다고 하겠다. 일본에서도 사농공상이 있었는데, 제일 상 계급의 선비 개념은 중국이나 조선과는 다르게 사무라이가 선비의 개념으로 상위 위치였다. 사무라이 가운데서는 전쟁이나 기타 여러 이유로 독립적인 성주의 지위에 오르고 휘하에 영지가 1만석을 넘으면 다이묘(大名)란 신분으로 대우 받고 그 영지 내에서는 왕과 같은 권세를 누렸다. 일본사회에서는 이런 카스트 제도가 진즉 없어졌지만, 의식 속에는 이런 관념이 다소 남아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신라시대의 골품제도를 들 수 있다. 골품제는 성골, 진골, 6두품 제도가 그것이다. 성골과 진골(聖骨.眞骨)은 신라시대의 신분제인 골품 제도(骨品制度)의 등급으로, 신라 사회의 최고 신분층이다. 신라 왕족인 성골은 경주 김씨 진흥왕의 장남 계열이 진덕여왕 대에 끊어지고, 진흥왕 차남 계열 후손인 태종무열왕과 532년 신라로 항복해 온 금관가야의 김해 김씨와 한반도 남부 통일 과정에 항복해온 일부 가야 왕족들이 진골의 등급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6두품 계층은 뛰어난 능력을 겸비한 지식인 계층이나, 신라의 골품제하에서는 큰 뜻을 펴지 못했지만, 이들은 후에 반 신라세력이나 지방 토호에 가담하거나 은둔생활을 하게 되며 특히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많은 6두품들이 왕건의 부하로 들어갔는데, 어떤 학자들의 연구는 이런 이유도 신라가 무너지는 한 요인이라고 분석하기도 하고 있다. 말이 육두품이지 3두품 이하는 사실상 평민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조선왕조에서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대표되는 카스트제가 성립되었다. 이것은 고려의 카스트제(귀족.중류.양민.천민)를 계승한 것이다. 양반계층의 하인(노비)일을 하거나 도축업을 하는 자들은 천민계층으로 분류되었다. 고려나 조선의 카스트제도에는 중인이라는 카스트 신분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기능직을 주로 담당하는 계층으로써, 실리적이었고 상업적이었다. 이 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양반 계층의 무능함이 폭로되고, 조선 정부의 공명첩 발행으로 인하여 크게 흔들린다. 사회 통념상 전통적인 신분제의 잔재는 한국 전쟁을 계기로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럽의 봉건적 카스트 계층에는 한 국가의 총 통수자인 국왕과 국왕과의 종속관계에 있으면서 국왕의 지방영토를 통치했던 영주계급과 전투를 담당했던 기사계급으로 대표되는 귀족 계급이 존재했고, 크리스트교 성직자 계급이 존재했다. 영주 계급에는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5개 관위가 존재했으며 공작보다 더 상위의 개념의 신분을 대공이라 칭했다. 대공의 경우 왕과 동일하게 개인 소유의 국가를 갖고 있을 수 있으며 현재도 모나코, 리히텐슈타인등의 공국이 남아있다. 생산 계층으로서는 농노계급이 존재했다. 유럽 카스트의 특징은 귀족 계급에게 권리를 양도하지 않았던 시민 계급(자유민)이라는 계급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 도시에 거주하던 시민들이었다. 형식적으로 국왕에 속하였고, 납세의 의무를 졌으나, 그 외의 다른 의무는 부여받지 않았다. 농노계급들도 영주로부터 도피하여 도시에서 1년과 1일 동안 체류하는 데 성공하면, 자유민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훗날 성직자계급과 귀족 계급은 시민 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고 했다.

사진3:푸리 해변에서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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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본다면, 인도만이 아닌 동서양이 다 카스트 제도가 존재했었으나, 인도는 그 뿌리가 너무 깊어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도의 카스트를 특히 입에 올리게 되고, 아직도 힌두교란 종교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불가촉천민들은 힌두사원에 들어가서 예배를 볼 수가 없는 것이 인도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점이 이슬람이나 시크교 같은 종교의 성장을 더욱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인도를 찾는 외부의 이방인들에게는 너무나 이색적인 이런 카스트의 유습은 눈에 크게 띄어서 흥미를 갖게 되고, 때로는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에 전연 외면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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