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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크로드불교-② 그레코-불교

헬레니즘과 불교의 융합
인도-그리스영토 기원전 1세기(검붉은 색 부분)
인도-그리스영토 기원전 1세기(검붉은 색 부분)


그레코-불교란 그리스를 뜻하고 그리스 사상과 불교사상이 융합하여 한동안 교류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인도의 불교가 만나서 탄생한 것이 그레코-불교이다. 지중해의 그리스에서 이런 사상적 교류에 의한 불교의 탄생은 아니고, 중앙아시아와 인도 쪽에 세웠던 그리스 식민국에서 이 같은 종교가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와 박트리아와 인도 아 대륙에서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 사이에 형성되고 발전한 불교사상이 융합하여 만들어 낸 불교를 그레코-불교라고 한다. 문화와 문화, 종교와 종교가 만나서 형성되는 싱크리티즘(syncretism) 또는 혼합주의(混合主義)는 본질적으로 상이하거나 혹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러 믿음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다양한 학파의 사상들을 융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신학과 종교적 신화의 영역에서 근본이 전혀 다른 몇 개의 전통을 하나로 합하고 유추하여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흔히 나타난다.

 이러한 종교적 사상적 융합 운동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에서 나타난다.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 종교 운동 중 하나로,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완전한 신인 데미우르고스가 완전한 신의 영(프네우마)을 이용해 물질을 창조하였고, 인간은 참된 지식인 그노시스(靈知)를 얻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조를 지닌다.

아소카왕(260〜218 기원전) 때의 불교의 전파.

아소카왕(260〜218 기원전) 때의 불교의 전파.


 초기기독교와 불교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물론 반대학설도 만만치 않지만, 기독교 성립에서의 불교 영향설이다. 여기서 길게 논할 수는 없지만, 불교가 기독교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들이 존재한다.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윌 듀런트(Will Durant: 1885〜 1981)는 그의 유명한 저서 《문명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서 아소카 왕(260〜218 기원전)이 불교 전도사들을 인도의 모든 지역과 실론, 시리아, 이집트, 그리스까지 보냈으며, 아마도 이들이 기독교 윤리학(ethics of Christ)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케네스 스콧 라터렛(Kenneth Scott Latourette: 1884〜1968)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난 시기에, "불교는 이미 인도, 실론(스리랑카), 중앙아시아, 중국에 널리 퍼져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세계기독교사 연구의 대가이며 특히 미국과 중국 일본과의 기독교 역사의 권위자이다. 이밖에도 상당수의 세계적 권위 사가들의 연구에서 보면, 초기 기독교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젊은 시절의 막스 뮐러

젊은 시절의 막스 뮐러


 초기비교종교학에서 가장 최초이고 가장 유명한 학자 중 한 명인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는 독일 출신의 영국 철학자이자 동양학자로서, 인도 연구에 관한 학문 분야를 서양에서 창시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뮐러는 인도사상에 대한 학술서적과 대중서적을 썼으며, 비교종교학의 권위자이다. 1883년 그의 책 인도: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가《India: What it can teach us》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깜짝 놀랄 만한 일치성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불교가 기독교 보다 최소한 4백년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점 또한 인정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이가 불교가 초기 기독교에 영향을 준 역사적인 경로를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나는 매우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라고 했다.

 서양 학자들은 이렇게 솔직한 학문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학자들은 편파 왜곡의 학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본다면 종교 간에 다툴 일이 없다. 근대불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부분에는 축적된 연구가 많지만, 이 정도 선에서 그치기로 하고, 본 주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리스와 인도가 만나면서 그레코-불교라는 혼합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그레코-불교의 혼합주의는 왜 탄생하게 되었는가도 흥미롭다. 그것은 알렉산더 대왕(356~323 기원전)의 페르시아 정복과 인도 공략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과 인도 공략은 그리스 사상과 불교가 만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좀 더 알아야 그레코-불교 이야기도 실마리가 풀리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알렉산더는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Alexander III Magnus)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북부의 왕국 마케돈의 아르게아다이 왕조 제26대 군주였다. 그리스 여러 도시 국가와 오리엔트 지방에 대한 공격적 팽창으로 패권을 잡아 마케돈의 바실레우스(군왕), 코린토스 동맹의 헤게몬(패자), 페르시아의 샤한샤(왕 중 왕), 이집트의 파라오를 겸임하고 스스로를 퀴리오스 티스 아시아스(아시아의 군주)라고 칭하였다.

 기원전 356년 펠라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20세의 나이로 아버지 필리포스 2세를 계승해 바실레우스(군왕)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치세 기간 대부분을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미증유의 군사 정복 활동으로 보냈다. 30세가 되었을 때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에까지 확장되었다. 그 이전까지 고대 서양에 전례가 없던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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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의 전투 장면


 유년기의 알렉산드로스는 16세가 될 때까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기원전 336년 부왕 필리포스가 암살된 뒤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드로스는 필리포스가 개척한 부강한 왕국과 숙련된 군대를 물려받았다. 아버지에 이어 코린토스 동맹의 패자로 추대된 알렉산드로스는 그 권위를 이용해 팽창 정책을 시작했다. 기원전 334년 그는 소아시아에서 군림하던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 제1제국)을 침공하여 10년에 걸친 원정을 시작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 등 몇 차례의 결정적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분쇄했고, 마침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죽음으로 몰아넣어 페르시아 제1제국을 멸망시켰다. 이 시점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돈 제국의 강역은 아드리아 해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렀다.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열망으로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26년 인도를 침공했으나 병사들의 반발로 회군하였다. 바빌론을 제국의 수도로 삼기 위한 개발을 계속하던 와중이었던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는 계획했던 아라비아 반도 원정을 시작하지 못한 채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그가 죽자마자 일련의 내전으로 산산이 조각났고, 조각난 각각의 지역은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장군들과 참모들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를 자칭하면서 각각 왕을 칭하고 할거하였다. 이들을 디아도코이라 한다.

 이런 결과로 생겨난 나라가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다. 이 왕국은 기원전 250년에서 125년까지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를 지배했던 고대 왕국이다. 기원전 180년 그리스-박트리아인들은 북인도까지 뻗어나갔으며 인도-그리스 왕국을 세웠고, 이는 기원전 10년까지 지속되었다.

 박트리아(Bactriana,大夏)는 힌두쿠시 산맥과 아무다리야 강(옥서스) 사이에 있는 나라이다. 그 수도는 박트라(오늘날 발흐)였다. 박트리아는 동쪽으로 불교의 발상지인 고대 간다라 지방과 마주하고 있었다. 박트리아 언어는 박트리아어(고대 이란어 계열)로 인도이란어파와 인도유럽어족 계통이다. 박트리아인들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남부에 거주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선조들의 일파다. 박트리아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으로, 근래에는 중앙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지칭하는데 쓰인다. 기후가 적합한 산지로, 물이 많고 땅은 비옥하다.

박트리아 영토

박트리아 영토
소그디아나 영토

소그디아나 영토
 

 소그디아나 또는 소그디아는 고대 이란 문화가 전파된 지역으로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많은 부분과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부하라, 사마르칸트, 후잔트, 판자켄트, 샤흐리사브즈와 같은 도시들이 이 지역에 속한다. 소그디아나는 다리우스 1세의 베히스툰 비문에서 18번째로 등장하며, 아케메네스 제국의 주를 일컫기도 했다. 아베스타(조로아스터 교 경전)에서는 소그디아나가 아후라 마즈다가 창조한 도시 중 2번째로 좋은 지역이라고 평가한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벤디다드에서는 아리아나 베야 다음으로 이 지역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고대부터 이 지역이 중요했음을 암시한다. 소그디아나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립자인 키루스 2세가 진출했으며 이후 기원전 328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 지역을 병합했다. 이후에도 셀레우코스 제국,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쿠샨 제국, 에프탈, 사산 제국이 존재했다.

 박트리아, 소그디아나는 페르시아(이란)계 인종이다. 페르시아계가 그리스 계에 정복당해서 그리스 왕국 즉 그리스 식민국이 출현했고, 인도의 불교가 이들 지역에 확산되었고 결국에는 이란계의 불교 승려들이 중앙아시아-서역-중국에 불교를 전파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대승불교를 확산시킨 쿠샨 왕조(30∼375년경 기원후)를 주목해야 한다. 쿠샨왕조는 타지키스탄, 카스피 해, 아프가니스탄, 갠지스 강 상류를 가로지르던 제국이었다. 월지 민족이 세웠으며, 중국, 로마 제국,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등과 교역했다.

보검<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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