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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납량칼럼②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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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칼럼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주는 곳이 아닌 우리 민족의 정신적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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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의 청정수와 구름, 그리고 하늘이 너무나 청명하다.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주는 곳이 아닌 우리 민족의 정신적 신앙
 
이제 처서가 지나니 폭염이 조금 가라않는 것 같다. 절기(節氣)의 변화는 어김없다. 일 년 365일을 15일씩 나누면 24절기(절후)가 된다. 15일로 나누면 양력은 대강 맞아 들어가지만, 음력으로는 맞지 않아서 윤달로써 보충하고 있다. 처서(處暑)는 24절기의 14번째로 태양 황경이 150도가 될 때이다. 양력으로는 8월 23일경에, 음력으로는 7월에 해당한다. 예부터 처서가 지나면;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라고 《월령72후집해(月令七十二候集解)》에서 설명하고 있다. 절후(節候)는 24절기와 72후(候)를 말하는데, 24절기는 1년 365(360)일을 15일씩 24로 나눈 것이고, 72후는 5일씩 나누면 72후가 되고, 이중 36후를 각각 음과 양으로 나눠서 본다. 아무리 일기가 춥고 덥더라도 이렇게 24절기와 72후가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인간들은 적응하도록 되어 있다. 음지가 지나면 양지가 오고, 양지가 지나면 음지가 오게 마련이다. 더위가 지나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또 추위와 눈보라가 날리고 그러다보면 또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이법(理法)이요, 계절의 변화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절기를 중시하고 자연에서 음양의 이치와 철학을 배우면서 삶을 영위했다. 근래에 와서는 이런 관조와 사색이 점점 빛을 잃고 모든 것을 문명의 이기에만 의존하려고 하다 보니, 이번 같은 폭염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아니면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니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상기온으로 아직은 더워 보인다. 지난번에는 납량 칼럼으로 바이칼 호수를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더위도 식히고, 우리 민족의 정신적 신앙인 백두산 천지도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90년대 중국과의 수교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을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필자도 일곱 차례 정도 가본 것 같다. 하지만 이중 백두산 천지를 본 것은 두 번인가 그렇다. 천지는 쉽게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곳이 아니었다. 기온마저 차가워서 그곳 정상에서 오래 머무를 수도 없었다. 짚 차로 올라가서 다행히 맑은 천지를 만나면 행운이고, 아니면 안개 속을 헤매다가 그냥 내려와야 했다. 그렇다고 하루에 두 번 갈 수도 없었다. 다음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운이 없으면 천지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지가 훤히 드러나서 보게라도 되면 정말 뛸 듯이 기쁘고 반가웠다. 사진도 찍고 소원도 빌고 온갖 다짐을 하면서 마음을 조용하게 비우면서 이것저것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번은 등산코스를 택했는데, 정말 난 코스였고, 힘들었는데 요행히도 백두산 영봉과 천지를 볼 수 있어서 힘들게 간 보람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백두산 밑에 있는 마을에서 바가지를 쓰고,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중국의 못된 인간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는 울분이 치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참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기에 속만 끌어 올랐다. 연길이란 데를 가보니 전부 우리 동포들이었고, 산하 또한 우리의 시골 풍경 그대로였다. 그때는 민족이란 것을 생각하고 통일이란 것을 생각하고 동포란 것을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역사의 줄거리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한 적이 있다. 백두산이 비록 중국과 북한에 걸쳐있지만,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우리 민족정신의 상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후, 나는 육당의 《백두산 근참기(覲參記)》를 읽으면서 더더욱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를 마음속에 간직하여 그리면서 가끔 화두공안처럼 마음을 집중해서 의식을 고정하곤 한 적이 여러 번이다.
 













▲ 68m 높이의 힘찬 낙차를 보여주는 백두산 비룡(장백)폭포.    


백두산은 2750m로 한반도에서는 가장 높으며 백두산의 최고봉은 장군봉이다. 2,500m 이상 봉우리는 백운봉 등 16개봉이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 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한민족과 만주족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었고, 환웅이 신시(神市)를 열고 단군이 태어난 성지라 여겨 신성시되었다. 또한, 백두산은 남만주 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뻗은 장백산맥의 주봉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을 백산, 태백산, 불함산, 개마대산 등으로도 불렀고, 《삼국유사》, 《제왕운기》에서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 부여,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으로 언급하고 있다.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고려사》의 고려 성종 10년(991년)조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주로 백두산이라고 칭하였는데, 장백산, 백산이라는 명칭도 간간히 나타난다. 역사적 지식을 더 전개해서 살펴보자.
 
백두산에 관련된 신화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만주족에게도 나타난다. 만주족의 기원신화의 중심지 또한 백두산이며, 청나라 시절 백두산은 만주족의 영산으로써 특별한 취급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산해경》의 기록에선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 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으로 불리었다. 현대에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통일되었는데, 이는 만주어로 '긴 흰 산', '큰 흰 산'이라는 뜻의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šangiyan alin)'을 의역한 것으로, 역사적으론 요, 금나라 시기부터 쓴 것으로 추정된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내려와 신시를 건설한 태백산은 대개 백두산으로 간주되어 왔다. 현존하는 태백산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삼국유사》이다. 《제왕운기》·《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동국사략》·《동사강목》은 '태백산','백두산', "백산'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이 산을 태백산 또는 백산이라고 불렀으며 이 산 주변에 백산부라는 고구려에 속한 말갈 세력이 존재했다.
 
백두산 천지의 물은 승사하(昇嗣河)를 통해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비룡폭포(장백폭포)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쑹화 강의 발원이 된다고 한다. 백두산은 쑹화 강 외에도 백두산 산정남쪽에서 압록강이, 무두봉(無頭峰 1,930m)의 북쪽 기슭에서 두만강이 발원하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근래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백두산은 한민족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영산이다. ‘90년대에 주로 가봤던 백두산과 연길은 이제 많이 변했으리라 상상한다. 백두산이야 크게 변했을 리가 만무하지만, 아마도 백두산 밑의 마을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나 있지 않는지 걱정된다. 20여년 전만해도 연길 시는 우리나라의 조용한 시골 읍 단위 정도의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번화한 도시로 변모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말하길, 서울특별시 ’연길구(延吉區)‘라고 부를 정도로, 우리 경제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한국문화와 한류가 들어가 있다고 표현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 현대도시로 변한 연길(엔지)시의 모습.(사진 출처: 연변일보).


올 여름 폭염에 시달리면서 가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가지는 못하고 이렇게 방안에서 상상으로 날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상상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번 여름에 절실하게 깨달았고, 이미 가본 시원한 곳도 화두삼아 집중하노라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으로 소득을 삼아야 하겠다. (객원논설위원· 해동 세계 불교 선림원 원장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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