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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납량기행칼럼●만주에서 내몽골로 향하다

















 















▲ 나이만 몽골족 학교에서 필자     

  
납량기행 칼럼이라면 독자 여러분들에게 시원한 바다나 강 소식을 전해줘야 하는데, 말이 납량이지 사실은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원한 기분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견문한 것을 전해 드리는 것도 잠시나마 더위를 이기는 납량독서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감에서 이런 제목을 붙여서 칼럼을 쓴다. 강이나 계곡 아니면 바다를 찾는 것만이 납량이 아니라, 낯선 곳에 대한 견문각지(見聞覺知) 또한 더위를 피해서 시원한 새 소식을 접해보는 납량독서 삼매가 아닌가 하는 바람에서 이번에 다닌 곳을 엮어보고자 한다. 지난 회에서는 압록강을 따라서 단동과 집안을 주마간산 격으로 간략하게 스케치한 바 있다.     

단동이나 집안은 최근 많은 한국 분들이 다녀가고 있고, 유적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내가 구태여 사족을 달지 않아도 될 듯해서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고, 길림성 집안에서 통화를 거쳐서 백산-연길-백두산(장백산) 답사 또한 정해진 코스지만, 나는 방향을 내몽골로 틀었다. 백두산은 네 번 정도 가봤기에 이번 기행에서는 집안-통화-요원을 거쳐서 내몽골 통료로 향했다. 대련-단동-환인을 거치면서 청나라와 만주족이라는 키워드가 뇌리를 점령했다.     













▲ 1765년 청나라의 최대 강역.   













▲ 청나라 태조 천명제(天命帝, 1559년 2월 21일~1626년 9월 30일) 누루하치.     


청나라는 긴 중국의 역사에서, 중국 대륙을 지배한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다. 1616년 누르하치(재위:1616~26년)가 만주를 통일하고 여진족(만주족)이 세웠던 금나라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후금(後金)으로 정하며 시작되었다가 후계자 홍타이지(재위:1626~43년)가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1636년) 주변 각국을 침공, 영토를 확장함과 동시에 군사·행정 제도인 팔기(八旗) 체제를 확립하였고, 홍타이지의 다음에 즉위한 순치제(재위:1643~61년)때 청의 팔기군은 산해관을 넘어서 명(明)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점령하고 수도로 삼아서(1644년), 1912년까지 300년간 중국대륙을 지배했다.     

청은 1911년 10월 10일에 발발한 신해혁명으로 인해 1911년 멸망하고, 혁명의 중심인물 쑨원은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을 수립하였다. 중국의 다른 왕조와는 달리 300년간 불과 몇 명의 황제만을 배출했는데, 강희제(康熙帝 1654년 5월 4일~1722년 12월 20일)는 청나라의 제4대 황제(재위1661년~1722년)로서 무려 60년을 황위에 있었고, 제6대 황제인 건륭제(乾隆帝 1711년 9월 25일~1799년 2월 7일)도 황위(재위 1735년~1796년)에 오르고 나서 60년간 중국대륙을 지배했다. 그렇다면 만주족은 어떤 민족인가?.     

만주족(滿洲族)은 만주(중국 동북부;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 연해주에서 발상한 퉁구스계 민족으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여진족의 후신으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뜻으로 후금(청나라)을 건국하였다고 하는데, 만주족은 대대로 동북지역에 살았으나 여러 가지 역사적인 원인으로 지금은 거의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2000년 경 조사로는 중국에 1,068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금도 만주족 자치현이 몇 군데 존재하고 있다. 과거에는 만주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청나라 시대에 진행된 민족 문화의 한족화(漢族化)로 인해 현재는 만주어의 사용 인구는 오히려 감소하여 극소수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 중국어를 사용한다. 현재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시버족은 건륭제 시대에 원정군으로 참가하여 정착한 만주족의 후예이지만, 스스로 만주족과는 다른 별개의 민족으로 간주한다.     

만주족이 퉁구스계라면, 그리고 퉁구스어계통이면 한민족과는 어떤 관계가 되는지 흥미로운 일이다. 사촌정도 된다고 보는데, 아직도 논란이 많은 것을 보면 쉽게 단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얼굴을 보면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어딘지 뿌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고구려-발해-금나라-청나라로 이어지는 단군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앞으로 더 리서치 해야 된다는 숙제를 안고 이 정도 선에서 만주족 이야기는 접기로 하겠다. 이번 기행에서는 만주, 몽골, 장전불교와 열하일기, 조선족에 이르는 자료 섭렵이 좀 필요했다.     














▲ 만주, 몽골, 장전불교와 열하일기, 조선족에 이르는 자료들.     


다만 이번 기행 루트에서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라는 우리 민족사의 큰 부분을 포함시켜야 하지만, 이 부분은 따로 기술해야할 분야라서 일단 이번 기행에서는 인지만 하고 자료섭렵과 구체적인 현장답사 또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분야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현장답사 또한 구체성을 띠어야 하고 기술 또한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는 다뤄보기로 하고, 다만 이 방면에도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고 현장 답사도 하고 자료도 모은다는 자세이다. 본래의 나의 관심 분야가 불교이다가 보니, 다른 분야는 좀 관심이 덜 갔으나 청나라 만주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조선 고구려 발해라는 우리 민족사의 주제들이 뇌리를 점령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기행칼럼 두 번째는 내몽고와 장전불교(藏傳佛敎=티베트)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하지만 장전불교는 차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길림성 통화에서 내몽골로 향하면서 요원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동북삼성(3省)과 내몽골 동부 지역을 같은 지리권역으로 분류하는 것 같았다. 요원에서 내몽골 통료까지는 버스로 갔는데, 만만치 않는 여정이었다. 이 지역은 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권이었다는 역사적 현장이지만, 지금은 동북 삼성 가운데 요령성과 내몽골 지역에 속했다. 통료와 적봉을 다니면서 중간 중간에 조그마한 타운들인 치(旗)라는 내몽고 자치구 행정단위 도시들을 찾아 다녔다. 내몽골 자치구는 중화인민공화국 북부에 위치한 자치구로서 몽골어로는 ‘외뷔르 몽골’이라고 표기하는데 ‘외뷔르’는 몽골어로 ‘남쪽, 안쪽, 앞쪽’을 뜻한다. 즉 ‘외뷔르 몽골’은 한국어로 직역하면 ‘내몽골’ 또는 ‘남몽골’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동북부 지역(후룬베이얼 시, 싱안 맹, 퉁랴오 시, 츠펑 시)은 동사맹이라고 하여 만주(둥베이=東北)의 일부로 취급한다.  













▲ 통료에 있는 내몽골 민족대학.    

  
내몽골 자치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끝도 한도 없을 내용이지만,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사실 내몽골은 이미 한족들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한족이 내몽골 자치구 주민의 80%를 차지하고 몽골족은 17%를 차지한다고 하며, 마오쩌둥 시대에 목축 경제의 집단농장화에 따라 정착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초원대신, 거의가 도시나 타운에서 살고, 몽골어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몽골지역의 역사를 보면, 후한 시대(25-220)에는 흉노가 한에 굴복, 하투(河套=허타오는 중서부 내몽고의 지역으로 황하 중상류 유역의 평원, 고원 지구)지역에 정착했고, 서진 시대에는 하투의 흉노의 대추장 유연(劉淵)이 한(漢)왕조를 이 지역에 세우면서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된다. 수. 당 시대는 다시 하투 지역을 점령, 한족들을 정착시켜 나갔으나 당의 몰락과 함께 중단되었다. 내몽골의 동쪽에서 힘을 키워오던 거란은 이 틈을 타 요나라를 세우고 내몽골 일대를 장악하지만 후에 여진족에 멸망하고 서쪽으로 이동해 서요를 세운다. 여진족은 금나라를 세워 북중국과 만주를 지배했다. 1206년 칭기즈 칸이 몽골 부족들을 통합하고, 1227년에는 서하를, 1234년에는 금을 점령했다. 그의 후손들은 1279년에 중국을 정복하고 원을 세웠다. 원은 1368년 한족이 명을 세우면서 다시 몽골 고원으로 되돌아왔고, 명은 현재 자리에 만리장성을 세웠다. 만리장성은 내몽골의 남쪽 경계와 대체로 일치한다. 17세기 만주족이 몽골족을 복속하고 1644년 명을 정복한 후, 청을 세운다. 만주족의 청조는 몽골을 외몽골과 내몽골 등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다른 방법을 통해 통치했다.  
내몽골 자치구에서 = 이치란 박사(매일종교신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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