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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현대 영국사회에서의 신종교운동 -이치란 박사

 


현대 영국사회에서의 신종교운동



 


- 서구불교 승가회와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불교 사상을 중심으로-



 




 


 



 


 



 


이 치 란 *



 




 


 



 


• 목 차 •



 


 



 


I. 시작하는 말



 


Ⅱ. 영국불교와 다종교



 


Ⅲ. 서구불교 승가회와 상가락쉬타 법사의 사상



 


Ⅳ. 신불교 운동과 국제 네트워크



 


V. 맺는 말



 


 



 


 



 


 



 


 



 


 



 


 



 


I. 시작하는 말



 


 



 


 



 


영국인은 매우 보수적이면서 경험주의적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전제는 아닌 것 같다. 유럽에서 영국은 매우 진보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사상적 전통을 지닌 지성사를 갖고 있는 나라다. 다른 분야는 차치하고서라도 특히 영국의 종교사를 보면 더욱 이런 전제가 부합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영국의 국교회인 성공회(Church of England)를 비롯하여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의 출현을 보더라도, 영국인의 사상적인 독창성과 기질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영국의 이런 종교적 전통에서 현대 영국사회에서의 신종교운동으로서의 ‘서구불교승가회와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불교사상’에 주목하여 영국불교와 세계불교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동시에 한국불교를 암묵적으로 통찰해 보는 목적에서 이 소론을 집필하였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영국 출신으로서 인도에서 20여 년 간 다양한 종교와 특히 불교의 여러 종파에서 영적 경험과 교학과 인도철학을 연마하고 수행자로서 실제적인 수련을 한 승려출신이다. 그는 상좌부 승려로서 대승과 티베트의 바즈라야나(金剛乘)와 동아시아의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모든 전통을 다 경험한 통불교적인 법사이다. 한국 불교적으로 표현한다면 원융회통에 의한 통불교적인 수행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인도에서 고난과 역경을 감내해 가면서 우여곡절 끝에 수행인으로서 영적 성취를 이루고, 영국에 가서 2,500여 년 전의 불타의 메시지를 현대 영국인과 서구인들에게 어필되도록 현대적인 방편을 통해서 전법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그가 이룩한 전법의 역사와 업적은 실로 경이로울 뿐이다. 영국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서구사회와 전 세계를 망라한 30여 개국에서 3천여 명의 엘리트 남녀 지도법사가 그의 ‘신불교 사상’에 입각해서 불교운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우리는 ‘조사서래의 하야호(祖師西來意何也乎)’를 신비적인 주술로 기억하고 있다.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었다. 이제는 이런 구호가 바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미 영국에서 영역하여 간행된 ‘팔리어 삼장’은 우리 가까이에서 읽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서 영국의 ‘신불교운동’의 파고가 극동인 한반도에 까지 파급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II. 영국불교와 다종교



 


 



 


 



 


서구불교 승가종과 승가회의 종교 활동은 영국에서는 신종교 운동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신흥종교라고 하면 이단적으로 보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해방 후에 기독교계에서 신교파가 많이 생겨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신흥종교하면 異端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불교계 신흥종교로는 신 카담파 전통, 소카 가카이 인터내셔날, 서구불교 승가종을 들고 있다. 이밖에도 남방불교인 상좌부와 일본의 禪佛敎(臨濟․曹洞), 중국, 월남의 대승불교가 들어와 있지만, 위에서 말한 3大 신흥불교조직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국불교를 소개하기 전에, 간략하게 영국의 종교현황을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은 인구 6천 만 명이나 되는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이다. 성공회, 로만 가톨릭, 장로교, 감리교 등을 합하면 전인구의 71.6%가 기독교 인구다. 무슬림이 2.7%, 힌두교 1%, 기타 1.6%, 종교를 믿지 않는 인구도 23.1%나 된다. 불교 인구는 이 기타 1.6%에 들어 있다. 하지만, 영국불교는 영국 국내에서 차지하는 불교인구수의 과다보다도 세계불교 차원에서 불교학 연구 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일찍이 산업혁명과 해양대국으로서 세계를 재패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 전 지구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행사했었다. 하지만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그 파워는 약해졌다. EU에 가입은 되어있지만, 경제와 통화는 한 발 비켜 서있다. 아무튼 영국은 기독교국가로서 여러 파 가운데 성공회가 국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성공회의 역사를 논하려면 매우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영국은 國敎인 聖公會(Church of England)가 있지만, 영국은 다종교 사회이다. 종교의 교세를 본다면 천차만별이지만, 그 내용면에서 본다면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은 영국에서의 소수 종파라고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가히 세계적이다. 특히 불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영국은 어떤 종교나 활동에 대해서 매우 관용적이며 차별정책을 쓰지 않는다. 성공회는 영국에서 종교개혁에 의해서 다시 탄생한 국교의 지위에 있는 영국인의 전통종교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회나 교회에 나가는 신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외부에서 온 종교나 소수 종교가 더욱 활발한 편이다. 이슬람 힌두교의 다양한 종파와 시크교, 유대교, 불교, 바하이 신앙결사체, 래스터패리언교, 新 異敎主義, 無敎主義, 인도주의, 세속주의까지 망라된 종교결사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종교사에서 기억할만한 일은 엘리제베스 1세(1558-1603)라고 하겠다. 잉글랜드의 왕정은 전성기를 누리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할 기반을 닦았다. 여왕은 헨리 8세의 강력한 종교개혁이후,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여왕 때 흔들렸던 종교를, 1559년 종교 통일령을 통해서 잉글랜드가 프로테스탄트 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이로 인하여 종교분쟁이 일어나고, 청교도들은 미국으로 가고 영국에 남았던 청교도들은 청교도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와 북 아일랜드를 합친 UK(United Kingdom)라는 나라다. 영국의 기독교와 기독교사를 이해하려면 상당히 복잡하다. 간략하게 말한다면 성공회는 헨리 8세에 의해서 로만 가톨릭에서 재탄생된 국교회이고, 영국의 주 기독교 교파이다. 스코틀랜드의 국교회는 장로교이며, 가톨릭은 제2 교파이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1829년 ‘가톨릭교도에 대한 해방령’에 따라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교구로 각기 분립됐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가톨릭이 우세하다. 다음은 다른 기독교 교파들로서는 감리교와 침례교가 있으며, 복음주의와 펜테코스탈 교회도 성장 중이다.



 




 


영국에서 기독교 다음으로 교세가 큰 종교는 200만 명의 이슬람교이다. 인도 남아시아인 들로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소말리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이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100만 명의 힌두교와 50만 명의 시크교도 만만치 않은 교세를 가지고 있으며, 소수이긴 하나 유대교는 노르망디 정복 때부터 있어왔던 종교다. 현대 영국사회는 종교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관대한 편이다. 어떤 종교나 신념체계에도 일단 관용의 자세로 바라본다. 이것은 영국인의 합리주의적 경험주의에서 나온 태도일 것이다. 일단 인정하고 점검하여 아니다 싶으면 냉정하게 외면하는 것이 영국인들의 종교에 대한 태도다.



 




 


영국불교를 논하려면 대영제국과 인도와 동남아와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영국은 1600년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인도에 진출했다. 1858년 동인도회사를 영국정부에 넘기면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본격화됐다. 영국은 1947년까지 브리티시 인디아를 통해서 아덴(예멘)과 미얀마를 포함하여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를 지배했다. 영국불교는 150여 년 전인 이 시기부터 인도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에서 불교와 접하게 된다. 처음에는 학문적 관심에서 불교라는 종교의 교리적 傳承과 철학에 접근하였다. 영국 내지 서구불교학에서 막스 뮐러와 동방성서를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영국불교학 특히 팔리문헌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인 팔리성전협회를 알아보자. 팔리성전협회(the Pali Text Society)는 1881년 리즈 데이빗드(W. Rhys Davids)에 의해서 설립됐다. 그는 1863년 스리랑카에 가면서 불교와 팔리어에 접하게 됐다. 그 전에 그는 독일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운 바 있었다. 독일과 영국은 18세기 중엽부터 동양학(Orientalism)연구를 시작해서, 이미 19세기 중반경이면 인도학 연구도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더욱이 대영제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함으로써 동양학 내지는 인도학 연구는 가속력이 붙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즈 데이빗드는 스리랑카에 가서 근무를 하게 됐고, 산스크리트어를 배운 경력을 배경으로 팔리어도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귀국해서 팔리어 경전들을 영역하기 시작했으며, 팔리성전협회를 창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팔리성전협회보다 2년 앞서서 1879년에는 에드윈 아놀드 경(Sir Edwin Arnold)의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이라는 운문체 서사 시집이 발간됐다. 아시아의 빛은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傳記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石塔 壁에 새겨진 랄리타 비스트라(Lalita Vistara)에 근거해서 불타의 일생을 그린 운문서사시집이다.



 


이 무렵 神智學의 창시자인 마담 블라바츠키와 올 코트 대령 등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1880년 그들은 삼보에 귀의하고 수계의식을 통해서 불자가 된다. 나중에는 힌두교에도 귀의하지만, 이런 일련의 불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불교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하지만 불교가 신앙적 내지는 실천적으로 수행불교가 이루어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했다.



 




 


이 기간 영국 독일 프랑스와 러시아는 동양학으로서의 인도학과 불교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교학연구 인구가 서서히 급증하고 실천적 측면에 까지 이르게 되자, 20세기 초, 신지학과 상좌부의 영향으로 1924년에 런던불교협회가 창립된다. 1926년에는 스리랑카 출신 비구에 의해서 런던불교사원이 문을 열고, 이후 서서히 서구인들이 아시아에서 남방불교 승려가 되고, 아시아에서 승려들이 영국을 방문하면서 영국 불교는 이론적 탐색 시기를 지나서 실천적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종식되면서 영국식민지인 인도나 스리랑카에서 근무했던 소수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불교승려로 또는 연구자로 방향을 잡게 된다. 이 소론에서 논하고자 하는 상가락쉬타 법사 역시 이 케이스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제 2차 대전이 종식되고, 바로 불교 승려가 되어 20여 년간을 인도에서 수행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한편, 영국불교계는 1950년대는 선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67년에는 티베트불교가 영국에 상륙하기 시작해서 붐이 일어나고, 1970년에는 태국의 정글에서 명상수행만을 한 태국사회에서 道人으로 추앙받는 아잔 차 門下에서 두타 행을 주로 한 아잔 수메도 비구가 태국의 삼림수행전통사원인 치터스터 트러스트 불교수도원장에 취임하여 태국 식 상좌부 승가를 건립하고, 일본에서 조동종 계열 사원에서 黙照禪을 닦고 한 消息한 영국출신 禪師가 토로셀 홀 불교 수도원(Throssel Hole Buddhist Abbey)을 열게 된다.



 


이 소론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서구불교승가종과 승가회는 상가락쉬타 법사가 1967년에 창종한 서구식 종단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남방 상좌부에서 수계하고 티베트 망명 스승들에게서 대승불교를 수학하면서 명상수행을 하고 돌아와서 비로소 문을 열게 된다. 처음에는 영국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어느 남방 상좌부 계통의 절에서 초청을 하였으나, 상가락쉬타 법사의 승려관은 남․북방 전통이 혼합된 통 불교적 승려로서 비승비속 스타일의 법사였던 것이다. 이즈음 영국불교계는 불교승가가 어느 정도 형성되는 시기였다. 인도로 짐을 싸러 갔다가 이곳 영국 절에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받고 그는 망연자실했으나, 영국에서 그를 따르는 일부의 추종자가 있고, 인도에 있는 망명 티베트 구루들의 자문에 따라서 귀국을 결정하고 거리에서부터 포교를 시작했다.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 서구불교승가회는 영국에서 신흥종교로서의 대표적인 3대 신 불교운동의 중심축으로 우뚝 솟아있다.



 


영국은 19세기 후반부터 불교학 연구가 시작되고 거의 1세기가 지나면서, 영국 불교는 현대 영국사회에 적응하는 응용불교의 형태로 새로운 불교승가가 출현한 것이 바로 이른바 3대 종파의 ‘신 불교 운동’이다. 티베트의 바즈라야나 전통에 뿌리를 둔 ‘신 카담파 전통’이나 일본의 일연종의 창가학회에서 파생된 ‘소카 가카이 인터내셔날’은 비 영국적인 불교전통이라면, 서구불교승가종과 승가회는 순수한 영국 출신에 의해서 창종된 그야말로 ‘신 종교(불교)운동’ 단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가락쉬타는 스리랑카로 떠나기 전에 벌써 런던불교회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고, 팔리성전협회에서 간행한 일련의 상좌부 경전과 금강경 등 대승불전을 읽고 어느 정도 신심을 다진 후에 인도에서 실천수행의 길을 20여 년 간 경험한 후에, 인도로부터 귀국해서 전법의 법륜을 굴리기 시작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III. 서구불교승가회와 상가락쉬타 법사의 사상



 


 



 


 



 


상가락쉬타(Sangharakshita, 僧護 1925~)법사는 1967년 인도에서 귀국하여 곧바로 서구불교승가회(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 FWBO)를 창립하고 1968년 서구불교승가종(the Western Buddhist Order, WBO)을 창종했다. 서구불교승가회의 정식 명칭은 더 프렌즈 오브 더 웨스턴 부디스트 오더(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 FWBO)이다. 에프 더블유 비이 오(FWBO)는 창립취지에서 ‘서구불교승가회는 불교의 진리를 현대사회에 알맞게 응용하여 전달하는 국제네트워크’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불교의 본질은 시공을 초월하며, 승가형태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變形될 수 있다’고 했으며, ‘지금 불교는 전 지구촌에서 전파되고 있으므로, 불교는 21세기에 부응하여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야한다‘라는 것이 FWBO를 창립한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념인 것이다.



 




 


FWBO의 제1차 활동은 재가생활을 하면서 명상을 통한 자기발견이다. 자기발견을 위한 명상을 하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이웃과 형제들에게 명상활동을 공유하는 일이다.



 


명상 테크닉은 불타께서 직접 행하셨던 아나파나사티(anapanasati, 호흡관법)를 하는 것이다. 아나파나사티는 호흡을 관하는 집중명상으로서 八正道의 正念(the mindfulness of breathing(anapanasati)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미얀마 식 관법 테크닉인 ‘호흡의 라이징 앤드 폴링(the rise and fall of the breath)’ 방법을 주로 수련한다. 그러면서 관법 내용은 慈悲觀(the metta bhavanathe, cultivation of lovingkindness)이다. FWBO의 지도법사들은 회원들에게 이 자비관을 닦도록 지도하면서 마음을 평정하게 하고 자비심을 길러 나와 남이 함께 평화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이것은 평등과 우정의 관계로서, 불교명상의 사회화로서 불교사상의 실천철학인 것이다.



 




 




 


FWBO는 상가락쉬타의 불교명상에 대한 신념이자 개인적 체험에서 철저하게 초기불교의 명상 正經인 아나파나사티 수타(Anapanasati Sutta, 안반수의경) 또는 사티파타나 수타( Satipatthana Sutta, 사념처경)를 所依經典으로 삼고 있다. 초기불교의 명상 술어인 사티파타나(Satipatthana)와 비파사나(Vipassana), 사마타(Samatha)와 사마디(Samadhi)에 대한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시켜서 명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은 상가락쉬타 법사의 명상철학의 근간을 이루고 또한 이 명상을 통해서 得力을 한 것이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특히 사마디인 定의 수련은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붓다고사의 위수디마가(Visuddhimagga)에서도 이 사마디를 강조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수련을 철저하게 함으로써 心田이 어느 정도 啓發됐다고 봤을 때, 대승불교와 티베트 불교 더 나아가서는 선불교 등 통불교적인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하고 있다.



 




 




 


상가락쉬타 법사의 사상은 철저하게 불교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그는 영국 출신이다. 그리고 그가 영국에서 정규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국의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식 교육제도가 아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진로에 대해서 매우 너그럽다. 자녀가 자율적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과외 같은 교육은 별난 일로 생각하는 것이 영국의 학부모다. 자녀들의 개성과 능력과 자유의지를 존중한다는 전통이 자리 잡혀 있는 곳이 영국이다. 오히려 학교 교육보다는 사회교육의 비중을 더 높이 산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공공도서관이 많은 곳이 영국이다. 지식은 도서관에서 쌓으면 된다는 것이고, 학교 교육과 실제 사회생활은 다르다는 통념을 갖고 있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스리랑카로 징집되어 가기 전에 벌써 상좌부 삼장은 물론 대승불전인 금강경과 육조 혜능의 법보단경 영문판을 읽은 바 있다. 그는 이 경전들을 읽고 난 후, 그는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언제나 불교도였다고 고백했다. 게다가 그는 한 때 의사의 오진으로 병상에서 2년을 보내면서 많은 양의 독서를 했다고 한다. 동서양의 고전을 비롯해서 예술, 문화, 철학, 문학, 사상서적 등 광범위한 독서량을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에 이미 쌓은 바 있고, 그는 미술에도 조예가 있었지만,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제 2차 대전 막바지에 암호 병으로 스리랑카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종전이 되자 인도에 눌러 앉아 20년간 불교의 여러 전통에서 불교철학 수학과 실제 수행경험을 쌓은 불교이론과 실제를 겸수한 학승이면서 명상가이다. 그의 영국 이름은 데니스 링우드 (Dennis Lingwood)이다. 그는 이미 불교도로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스리랑카에서 근무했고, 종전 뒤에는 인도에서 고행을 감내한 것이다. 상좌부에서 비구계를 받았지만, 그는 티베트 불교 전통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특히 차트랄 상게 도르지(Chatral Sangye Dorje) 린포체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지금도 독신이면서 완전 채식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상가락쉬타 법사의 불교사상은 상좌부와 대승불교와 티베트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선불교에 까지 미친다. 그는 어느 한 종파에 치우치는 불교사상가가 아니다. 서구사상과 철학과 인도의 정통육파철학까지 마스터한 불교사상가로서 통 불교적이라고 하겠다. 원효의 원융회통 사상적 태도와도 통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의 불교사상은 실천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도 전혀 사상적 풍토가 다른 영국의 현대사회에서 불교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는 인도의 히말라야의 국경 소도시인 칼림퐁에서 14년간을 보냈다. 벵갈어 네팔어 힌디어와 영어가 공존하는 국제타운이다.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이다. 인도 서 벵골 주의 북부지역으로 부탄 다르질링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시킴 주(州)의 경계로, 해발고도 1,200m에 위치한다. 시킴 주를 지나 티베트로 가는 상업도로의 최북단 도시이다. 티베트 상품의 교역지이고 기온이 낮아 휴양지가 되어 있다. 티베트·네팔·부탄 등의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국경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인도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수행자들을 만났고,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현대 인도 헌법을 초안한 암베드카르 박사(Dr. B. R. Ambedkar(1891-1956)를 불교로 인도하여 불교개종운동을 하게끔 한 당사자이기도하다. 그는 경이적인 저술가이며, 대중연설가이다. 서구에서 불교를 주제로 한 대중연설가는 그를 당할 자가 없다.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자아도취적인 인물로도 묘사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불교의 정통 수행법에 의해서 수련을 한 법사다. 또한 전통적인 힌두 구루들의 유혹(마술)과 티베트의 법력 있는 라마들의 신비술(법력)을 잘못 사용한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가 인도에서 20년간 수행한 경험을 갖고 있는 데에서 오는 선입견이라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현대불교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2500년 전의 방법론으로는 현대 사회인들에게 어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의 본질은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의 언어와 제스처로 불교를 재해석해서 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가 공동체의 형태는 물론 수행자의 신분까지도 현대사회에 적응되도록 變形되고 變容되어야 한다는 것이 상가락쉬타 법사의 현대적 불교관이다. 그는 50여권의 저서를 갖고 있는 불교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석학이면서 사판승으로서 CEO형 불교실천사상가이다.



 




 


 



 


Ⅳ. 신불교 운동과 국제 네트워크



 


 



 


 



 


영국의 3대 신불교운동 단체 가운데 FWBO는 운동의 초점이 여타의 두 단체보다도 실천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념과 실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 FWBO는 순수이념불교보다도 응용불교 지향적이다. ‘소카 가카이 인터내셔날’이 세계평화구현이라는 평화운동에 집중하고, ‘신 카담파 전통’은 티베트 불교이념에 입각한 영적계발운동과 회원들을 위한 내적 수행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에 FWBO는 내적으로는 순수불교이념을 배우고 명상을 통한 내적 수행을 하면서 불교이념을 사회활동을 통해서 구현한다는 데에 근본 취지가 있다. 이런 종교를 통한 사회운동은 기성종교에서는 이미 열기가 식어 버린 테마다. 하지만 이 신 불교운동은 영국이나 서구사회에서 불교를 통해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FWBO는 그 실험에 성공한 케이스다. 서구불교승가회(FWBO)의 성공사례는 그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도자 상가락쉬타 법사는 20여 년을 인도에서 고행이라는 대가를 지불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40년간 현대 영국과 서구사회에서 얻어 낸 한 현대불교 지도자의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1967년 영국의 한 남방불교계 사원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귀국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남방 비구계만이 아닌 티베트의 4대 종파인 닝마파와 겔륵파의 망명 고승들로부터 비의를 전수받고 티베트 식 보살계까지 받은 상좌 대승 티베트 전통이 혼합된 통불교 승려였다. 어느 한 불교전통에 얽매여 있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무튼 이 사원에서 그의 설법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설법은 찬반양론이 교차하였으나, 영국인들 특유의 종교적 개혁과 관용 그리고 타 신념에 대한 이해로 일단 그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인도에서 짐을 꾸려 귀국하도록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인도에서 귀국 직전 한 통의 사절 편지를 받고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티베트 고승들의 자문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영구 귀국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의 일부 추종자들과 함께 런던 중심가의 몬 마우스 거리에 가게 딸린 지하실에서 그의 신 불교 운동은 시작하게 된다. 1967년 서구불교승가회를 결성하고 그 다음해에는 서구불교승가종을 창종한다. 그는 그의 신 불교운동 결사체를 2원 구조로 조직한 것이다. 승가회는 전통적인 우바새 우바이의 신도조직으로, 승가종은 전통적인 비구 비구니의 出家衆으로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出家.在家衆의 승가공동체 조직을 현대 영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성 종교와 유사한 구조로 변형시킨다. 그것은 法師法階制度이다. 出.在家 구분 없이 남자 지도자는 담마차리(法師, Dharmacari) 여자 지도자는 담마차리니(法師尼Dharmacarini)로서 승가종 소속으로 수행과 전법 활동을 하게 한 것이다. 理.事判의 현대적 변용이었다. 출가독신 남녀법사는 수행과 전법에 전념하고, 재가결혼 남녀 법사는 명상지도와 불법포교는 물론 사회복지 봉사활동과 비즈니스까지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남녀법사는 독신이나 결혼유무와는 상관없이 동등하다. 남녀법사의 개인적 판단과 의지에 의해서 독신과 결혼유무를 선택할 뿐이다. 그러나 수행경지의 높낮이와 法의 深淺은 분명하게 가리고 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공동체는 평등과 무차별적이다.



 


결국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 불교구상은 현대영국사회에서 구체화되면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영국 내지는 서구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불교 현대화였던 것이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인도에서 20년간 수행의 내공을 쌓으면서 전통적인 불교 모습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다. 현대불교의 위기를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다. 더욱이 서구사회에서는 불교의 본질은 살리되, 모습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실천에 옮겨서 결국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승려보다 더 수행을 많이 하고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것이 성공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노상포교나 다름없는 거리포교로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명상지도도 하고 설법도 하고 의식도 집전하면서 청소도 하는 1인 다역의 역할을 하여 직접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 설법방식도 일방적인 설법만이 아닌 많은 질의응답을 통해서 영국인들의 영적 갈등과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그의 명쾌한 논리는 갈수록 힘을 얻고 회원의 증가를 가져왔다. 그의 불교관은 전통적인 모든 종파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종통을 계승한 승가를 존경하지만, 현존하는 모든 종파의 전통적인 수행법 내지는 전법 포교활동에는 비판적이었다. 상좌부 대승 금강승 정토 여래장 불성 등의 종지와 사상에 대해서 현대적 변용을 주장하고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초창기 그의 현대적 변용과 신 불교운동은 서구의 불교계에서 조롱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구불교승가회에는 사람이 모이고 승가공동체는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서구불교승가회는 어떤 종파의 불교전통이나 사상과 수행법에도 이해를 하고 개방적이다. 하지만 다른 불교의 전통을 서구불교승가회의 센터에서 가르치지는 않는다.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 불교 운동 노선을 따라야만 한다. 승가회의 초심자들에게는 불교의 다른 전통은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승가회는 영국뿐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인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중미 남미 등 전 세계 30개국에 3천여 명의 남녀법사가 있으며, 회원은 영국만 30만 명이며 전 세계에 연 회원이 2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수치는 자매단체인 인도의 범 세계불교교단우의회의 회원 수인 수 백 만 명은 제외한 것이다.



 


그의 신 불교운동은 현대불교의 위기에서 출발한다. 2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불교는 현대사회에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여러 종교와 과학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본 것이다. 현대문명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생활방식을 철저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의 방식과 사고를 매우 혼란시키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수의 대중은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산실인 서구사회 자체에서도 과학기술문명에 대해서 혼란과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이런 현대기술문명 사회에서 불타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처방전이 됨은 분명하지만,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전통적 방법에 의한 불타의 메시지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는 어떤 형태의 불교가 서구사회에 알맞은가? 현대불교는 서구문화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 그는 불교는 서구사회인들의 정신적 갈등과 고민을 해결해 줄 해법이라는 것을 확신했음에도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난감했던 것이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이런 화두와 직면했던 가장 직접적인 문제와 고민했던 현대불교 사상가 가운데 탁월한 지도자중 한명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그는 먼저 번역 사업부터 하기로 하고 전통불교사상에 대한 서적을 번역하고 그 자신이 저술활동을 강화한 것이다. 인도에서 20년간 시집과 몇 권의 불서를 이미 발간한 바 있었지만, 저술활동과 명상지도 강연 등을 통해서 그는 그의 신 불교운동을 펼쳐나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신 불교운동의 사회화에 착수하게 되고, 40년이 경과한 지금 FWBO는 엄청난 조직으로 성장 발전했다.



 


FWBO는 영국과 세계네트워크로 조직화되었으며 FWBO의 웹사이트는 8개 국어로 떠있다. FWBO는 회원들에게 명상과 불교 교리를 가르치고, 사회참여활동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사회활동으로서 푸른 불교운동이라는 이념아래 환경운동, 채식운동 불교생태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명상을 통한 정신건강운동을 청소년들에게까지 실시하는데 캠핑 활동 등을 통해서 자연 친화와 환경 생태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활동을 각 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다. 청정 비젼 트러스트(the Clear Vision Trust)와 시청각미디어(audio-visual media)를 통한 불교이해진흥운동을 벌이는데, 어린이들과 초․중․고등 및 대학에서 활동한다. 비 불교 학교와 워크숍 단체에서에 까지 활동을 벌일 정도로 영역이 확대되어 있다.



 


국제네트워크로서는 30여 개국에 FWBO의 지부가 있으며, 각 지부는 그 나라의 사회현실과 사람들에게 적응될 수 있도록 활동을 하게 한다. 그리고 FWBO는 인도불교부흥운동을 범세계불교교단우의회(TBMSG)와 협력해서 추진하고 있다. TBMSG는 인도에서 설립된 FWBO의 분신과 같은 단체이다. 또한 인도 네팔 등지에서 의료 복지활동을 하는 카루나 트러스트와도 긴밀한 관계에서 협동하고 있다. FWBO는 영국과 국제네트워크를 통해서 타 불교운동단체와 연계해서 협력운동도 펼친다. 불교참여연대, 아미타 트러스트, 자유를 향한 명상, 조아나 머시(Joana Macy)의 생태운동 단체와 연계해서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신 불교운동을 펴고 있는 서구불교승가회는 회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명상이다. 이 단체에 입문하면 제일 먼저 명상을 지도한다. 우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불교를 가르친다. 부처님과 그의 교법, 사제 8정도, 三學, 三寶의 기본 교법을 가르치고, 다음 단계로서는 본격적인 수행단계로서 명상수련에 들어간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방법을 가르치고, 다음에는 아함니까야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읽도록 한다. 다음은 의식과 불자로서의 헌신에 대한 신심을 갖도록 하고, 비로소 10계를 설하여 지키도록 하며, 불교축제일인 웨사카 데이(5.15), 法(dhamma)의 날(7.15), 승가의 날(11.15), 열반절(2.15)을 기리고 행사에 적극 참여시켜 불교축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은 FWBO의 본부인 영국과 세계 각 국의 FWBO국제네트워크가 동일하다.



 


그리고 권장 참고서적으로는 서구불교(Western Buddhism by Kulananda)와 브리튼 불교(Buddhism in Britain), 영국불교약사를 읽도록 하고, 세계 불교계의 유명한 웹 사이트로 매우 인기 있는 www.dharmanet.org, www.buddhanet.net, www.stupas.org를 보도록 하며 Shambala Sun Magazine 잡지 등을 읽도록 하고 있다. 자체 조직 강화에 대한 정신 교육으로는 FWBO는 어떤 조직인가, 창립이념과 목적과 조직에 대해서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참여활동의 필요성으로서 푸른 불교운동을 통한 환경운동, 채식주의와 같은 책을 읽도록 권장한다. FWBO의 역사, 상가락쉬타와 그의 가르침, 상가락쉬타의 간단한 이력, 상가락쉬타의 법맥과 그의 설법집을 읽도록 한다. 상가락쉬타는 개인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다. 이 웹시이트에서 그의 다양한 기사와 시집과 산문을 읽어서 상가락쉬타를 더욱 이해하도록 한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말한다. 2500년의 불교 역사상에서 많은 종파가 출현했다. 불타의 근본적인 통찰을 잘 지키는 종파가 있는가 하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진 승가는 수없이 많다. 이런 종파 출현에 대해서 결코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보다 불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이런 전통이 살아있는 종파가 있는가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종파도 무수히 많다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티베트 바즈라야나(金剛乘)의 풍성함과 선불교의 간결함이 있을지라도 모든 불교 종파들은 불타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수행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종파의 우열이나 시비를 가리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은 분석이라고 보는 것이 상가락쉬타 법사의 종파관이다. 불타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변함없지만, 시대와 당대의 인간들의 사유와 삶의 방식은 항상 변하는 것이므로, 거기에 적응하려는 불교전법활동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조직한 서구불교승가종이나 승가회 또한 향후 몇 십 년 아니면 1세기 후에는 또 다른 형태의 승가로 변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불교의 승가 형태로서는 서구사회와 서구인들에게 불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방법상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옷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는 그가 서구불교승가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단체의 조직과 활동 영역은 영국에 국한되었고, 멀리 있는 친구들과는 서적을 통해서 소통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느 사이인지 이제는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 세계 30여 개국과 3천명의 남녀법사와 더 나아가서는 200만 명의 회원들과도 직접 소통하는 시대가 됐다는 경이감을 토로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서구불교승가회는 이제 제2기로서 비약적인 도약의 단계에 이미 진입해 있다고. 그것은 인터넷을 통한 국제네트워크를 말한다. 서구불교승가종에서 활동하는 그의 제자들이나 승가회의 회원들만이 아닌 그 밖의 사람들에게 불타의 메시지를 바로 전해주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통한 국제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보살은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도록 서원을 세운다. 가장 이 서원을 실현하기에 알맞은 방법은 인터넷의 활용이라고 말한다. 가상세계는 이미 화엄에서 말한 중중무진의 화장세계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상가락쉬타 법사의 법력은 바로 이와 같은 훌륭한 직관력이다.



 


상가락쉬타 법사는 불타의 사상을 인터넷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 시대에 부합하는 포교활동으로 생각한다. 불타시대에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통신기술에 의한 매스 미디어가 없었지만, 만약에 있었다면 불타 석가모니도 인터넷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불타는 인터넷 이상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영적 교신을 이미 했지만, 우치한 중생들은 이런 불타의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역을 하는 중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매스컴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V. 맺는 말



 


 



 


 



 


이상에서 서구불교 승가종과 승가회를 살펴본 바와 같이 FWBO는 현장중심의 불교를 행하고 있다. 영국만이 아닌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인도의 범세계불교교단우의회 등과 국제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유기적으로 응용불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FWBO는 초창기의 어려운 역경과 좌절을 극복하고 신종교 내지는 신 불교 운동단체로서 명성을 얻은 것이다. FWBO는 결사목적과 활동목표를 문자 그대로 실천하여 영국인들을 포함한 서구인들에게 새로운 영적 이정표를 제공하고 2500년 전의 석존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해주는데 성공한 것이다.



 


석존이 사르나트에서 轉法輪을 굴리신 이후, 불교는 동서남북과 중앙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의 메시지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영국인 서방에서도 이 메시지는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 法鼓를 울리는 리더가 바로 상가락쉬타 법사이며, 그 단체가 바로 서구불교승가회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結社의 현대적 조직과 운영 노하우를 인도에서 그대로 구현하여 성공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이 현대적인 포교전략과 활동 노하우는 아시아의 전통불교사회에 벤치마킹 될 것이다.



 


FWBO는 불교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그는 전통불교의 다양한 종파에서 영적경험과 수련을 바탕으로 통불교적인 운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에서 상좌부와 티베트의 전통을 함께 수학하고 수련했다. 베나레스 힌두대학에서 비구 자그디시 캬사파(Bhikkhu Jagdish Kashyap)로부터 팔리어와 아비담마 불교인명논리학을 배웠고, 히말라야의 국경 칼림퐁 국제타운에서는 대승과 티베트 불교를 수학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서 티베트의 여러 망명 고승들로부터 교학을 배운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고 그는 밝히고 있다. 그리고 대각회의 잡지 편집을 돕고 글을 쓰면서 세계의 이름 있는 불교학자와 고명한 사람들과 이를테면 라마 고빈다(Lama Govinda), 허버트 군테 박사(Dr Herbert Guenther), 에드워드 콘제 박사(Dr Edward Conze)와 그리스 왕자 피터(Prince Peter of Greece)등과 교유한 것 또한 그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 한 종파에 집착하는 편협한 불교사상가로 전락하지 않은 것은 다 이 같은 배경에서다.



 


그는 영국에서 유년시절 석탄가게에서 일도 해봤고, 런던시의 한 구청에서 서기도 해봤다고 한다. 일찍이 상좌부의 니까야와 대승의 금강경 육조단경을 읽었고, 신지학회의 마담 블라바츠키 여사도 만났고, 크리스마스 험프리즈의 런불교협회에서 불교강좌도 들었으며, 시도 쓰고 사랑도 해 본 경험을 갖은 후에 인도에서 수행자로서 20년간 두타 행을 한 것이다. 그는 한 수행자라는 차원을 떠나서 자수성가형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어떤 유형의 인물들과도 대화를 나누면서 불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의 설법은 명쾌하다고 한다. 그리고 전통이나 인습에 사로잡힌 막혀 있지 않는 개방적인 자유형의 성자라고 까지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는 칭송한다. 그의 제자들은 다양한 배경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소박한 농부, 궤변적인 전문가들, 전 기독교인, 전 공산주의자, 인도인, 미국인, 지성인, 신도들, 隱士들, 활동가들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 불교운동은 이제 영국과 서구사회와 인도에서 기반구축을 결성한 다음 곧 이어서 아시아 불교국가로 전파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게다가 동아시아 불교 권에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화엄사상과 선불교는 이미 서구의 환경과 생태학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현대 물리학에서는 화엄철학과 초끈이론이 맞아 떨어진다고 하여 화엄경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의상대사의 法性偈가 초끈이론의 압축이라고 하여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앞으로 얼마든지 세계적인 불교로 부각될 수 있는 역사와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교학연마와 수행체계의 전근대성 그리고 응용불교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서구불교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국의 다종교 환경과 현대 한국불교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이 신불교운동은 앞으로 한국불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필자는 보면서, 특히 한국불교의 출․재가종단이나 재가신행단체들에게 하나의 좋은 典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맺는다.



 


 



 


 



 


 



 


 



 


 



 


 



 


 



 


 



 


 



 


 



 


 



 


 



 


 



 


 



 


 



 


 



 


 



 


[ 국문초록 ]



 


 



 


영국에서 신종교운동이라고 일컫는 서구불교승가회를 이끌고 있는 상가락쉬타 법사는 영국 출신 불교지도자이다. 그는 인도에서 20여 년 간 다양한 종교와 특히 불교의 여러 종파에서 영적 경험과 교학과 인도철학을 연마하고 수행자로서 실제적인 수련을 한 불교승려출신이다. 그는 상좌부 승려로서 대승과 티베트의 바즈라야나(金剛乘)와 동아시아의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모든 전통을 다 경험한 통불교적인 법사이다.



 


이 소론에서 필자는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불교운동을 소개하고 이 운동의 주체인 서구불교승가회를 살펴본 것이다. 그리고 이 신불교운동은 불교의 명상을 기본 지도이념으로 하여 각 지역 센터와 회원들은 어떤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불교운동 사상과 이 단체의 국제네트워크를 통해서 불교의 현대적 응용과 그 실제적 가능성을 고찰해 보는 것이 또 하나의 논문 작성의 이유이다.



 


그는 현대불교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승가형태나 포교방식으로는 현대사회에 불타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고 판단, 스스로 현대영국사회에서 신 불교운동을 실천하여 성공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떠오는 불교운동의 실천적 사상가이다.



 


필자는 현대 영국사회에서 뿐 아니고 서구사회와 인도 그 밖의 나라에서 불타의 메시지가 살아 움직여지도록 과감하게 전통불교의 형태를 변형시킨 담마차리 상가락쉬타의 신불교운동을 포함한 신불교사상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이 소론을 작성했다. 희망하건대 상가락쉬타 법사의 신불교사상과 서구불교승가회의 운동이 한국불교 승가와 재가 신행단체들에게 하나의 典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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